2018년 제19회 정기연주회 연주곡 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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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정수구
댓글 1건 조회 967회 작성일 18-06-09 0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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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리아남성합창단 제19회 연주회 연주곡 해설

Bariton 정수구

 

주 은혜가 나에게 족하네

홍지열 작곡

 

“나에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고린도 후서 12:9)

이처럼 역설적인 은혜가 있을까? 내가 약한 것이 오히려 은혜가 된다는 역설적 진리를 모른다면 기독교는 생명이 아닌 종교로 머물 뿐이다. 우리가 약할 때 들어 쓰시는 하나님을 온전히 의지하고 그이 절대 주권을 철저히 인정하는 찬양이 바로 이 곡이다. 곡은 맨 처음 웅장한 합창이 아닌 솔로로 담담하게 그러나 진솔하게 나의 약함을 고백하고 주의 능력으로 강하게 됨을 고대한다. 이어 “주 은혜가 나에게 족하다”는 고백을 하면서 화음이 은혜로 표현된다. 이렇게 담담하게 시작된 곡은 반복하면서 화성적 두터움에 고음파트의 외침이 얹어져 확실한 능력을 표현하며 진행되다 확신으로 끝난다. 목회자의 딸로, 목회자의 반려로 일하는 작곡가의 신앙 풍모가 드러나는 곡이다.

 

 

 

손뼉치고 찬양하라

John Rutter

 

John Rutter(1945~ )는 영국의 작곡가, 지휘자 음악 교육가이다. 영국과 미국에서 그의 합창성가는 꾸준한 인기를 끌고 있으며 고전적 깊이와 뮤지컬적 서사, 변박을 다양하게 활용하는 현대음악적 요소를 모두 갖췄다는 평가를 듣고 있다. 이 곡은 마림바 등 타악기를 연주하는 듯한 피아노의 전주 후 활기찬 합창으로 시작한다. 고전적인 선율미를 추구하는 그의 음악은 이 곡에서 다소 우연성이 있는 듯한 멜로디를 연결하지만 이는 반복을 통해 필연을 표방한다. 히브리 음악적 요소와 현대음악적 요소가 곡 속에서 악수하며 서양음악과 성가곡의 갈 길을 모색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다. 4/4, 2/4, 3/8, 5/8, 6/8, 7/8 박자가 비교적 짧은 곡 안에서 두루 쓰이는 데다 두 번의 조옮김이 있어서 수다스러울 정도로 활달하다는 인상을 준다.

 

 

Praise His Holy Name

Keith Hampton

재즈는 유럽음악의 화성과 아프리카 음아의 리듬이 결합된 양식이다. 또는 양식이 아니기도 하다. 또는 기존 음악에 대한 패러디이기도 하다. 본 곡 <Praise His Holy Name>은 두 개의 서로 다른 찬송을 전혀 다른 노래처럼 만들어 한 틀에서 화학적 결합을 한 곡이다. 유럽의 화성과 아프리카의 리듬이 역시 이 곳 속에서 화학적 결합을 하고 있다. 연속되는 싱코페이션에 의해 리듬은 쪼개지고 변용을 거듭하여 복잡하다는 느낌이 들기도 하다. 합창과 제창이 교차되고 두 개의 다른 멜로디가 병행되는 대위적 진행도 보여져 짧은 길이에 비해 할 것이 매우 많은 곡이다. 재즈 연주 시 각 악기들이 독주를 하는 방식이 있는데, 이곡에서는 짧지만 강렬한 피아노 독주가 종지부 전에 나와 재즈 음악적 편린을 보여주기도 한다. 또 후반부에 합창단이 박수를 치면서 음정이 없이 연주하는 부분도 있다. 이런 것드링 의도된 산만함을 보여주면서 오히려 자유스럽고 천진한 찬양이 되었다.

 

믿음의 축복

김민식

복음성가 작곡가인 김민식의 곡이다.

바리톤이 부르는 친숙하고 귀에 와 닿은 선율이 곡 전편을 지배하면서 선율의 반복, 다른 선율의 출현, 주 선율의 반복과 맺음 부분으로 이루어져 전형적인 기승전결의 구조를 갖고 있으며 비교적 단순하고 소박한 가운데 찬양자의 겸손의 고백이 가사에 흐른다.

한국교회가 축복지상주의적이고 세속적 축복만을 희구한다는 비판을 듣고 있는 때에 믿음이 가장 양보할 수 없는 축복이란 범을 강조한 본 곡의 가사는 생각해볼 부분이 많다. 그리고 믿음 자체를 가장 큰 축복이라 인정하고 이를 갈구할 때 탄식이 변하여 노래가 되고 내 영의 살게 됨을 아는 지혜가 얼마나 소중한가를 깨닫게 된다.

 

 

작곡가 신동수 특집 무대

 

코리아 남성합창단의 제19회 정기연주회 두 번째 무대는 작곡가 신동수 선생의 곡으로 꾸며본다.

신동수는 서울대 음악대학 작곡과와 건국대학교 교육대학원 음악교육과를 졸업하였으며 제3회 MBC대학가곡제에서 대상을 수상하였다. 현재 선화예술고등학교 교사로 재직 중이다. 그는 <우리 노래 펼침이> 활동을 통해 우리 말을 우리 음악으로 담는 작업을 소명처럼 계속하여 왔다. 그는 한국 가곡이 갖고 있는 구태의연함과 대중과의 괴리, 두 가지 약점을 타파하기 위하여 대중성과 예술성을 겸비한 예술가곡을 다수 발표하여 왔고 많은 성악가, 음악 애호가의 사랑을 받고 있는 작곡가이다. 특히 지난 3월에는 신라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오페라 <몽월>을 갈라콘서트 형식으로 공연하여 오랜 시간 작업한 오페라를 무대에 올렸다.

그의 음악적 특징은 모국어인 한국어의 음악적 활용과 시의 선택이 탁월하다는 점이다. 이는 그가 음악적 전문성뿐 아니라 인문학적 교양을 갖춘 작곡가이며 성악에 대한 경험과 이해가 남다르다는 점을 나타낸다. 또 다른 특징은 피아노에 대한 사랑이다. 그의 음악은 피아노 반주자들이 선호하는 음악이다. 선율미와 음악적 깊이가 있고 감성과 드라마틱한 부분이 겸비된 그의 피아노 반주 작곡은 전적으로 피아노라는 악기에대한 그의 사랑에 기인한다. 그의 피아니즘에는 베에토벤에 대한 존경과 쇼팽에 대한 동경이 자리 잡고 있다. 또한 6,70년대를 향유한 리처드 클라이더만과 같은 대중적 연주자들의 감수성까지도 공유하여 고전적 형식미와 낭만주의적 분방함과 대중에게 사랑받을 여지가 있음을 보여준다.

 

<아버지! 사랑해요>는 신동수가 작사 작곡한 곡이다. 그의 삶에 큰 나무 그늘로 드리워진 아버지에 대한 감정이 애정이 나타난 곡이다. 필자는 지난해 말 아버지를 멀리 보내 드렸다. 누구보다 강했던 아버지는 말년에 여위고 병든 몸으로 내게 의지하셨다. 아버지를 보내드린 다음 주에 이 곡을 처음 접했다. “...당신이 약하고 작아진 이유...”라는 가사가 유리처럼 심부에 들이박혔다. 12/8박자에 세 개씩 묶여 분절돼 흐르는 리듬이 마음을 삼단三斷하고 삼분三分했다. 노래를 부를 수가 없었다, 음악이 아니라 진혼鎭魂을 위해 불태우는 지전紙錢이었고 영전에 엎드려 흐느끼는 곡哭이었다. 남의 일로 느껴지던 감정이 나의 큰 일이 되는 인생의 지점에서 이 노래를 만났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 더 처연해졌다. 어린 시절 내가 아버지를 기다리던 눈을 하고 어린 아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들을 안고 아버지를 생각하였다. 이것이 인생인가? (개인적 소회로 해설을 대신함을 용서하십시오.)

 

<그 곳에 그대가 있으니>(김상희 작시)는 영화 같은 곡이다. 드라마 같은 곡이다. 첫눈이 오고 차가운 바람이 불어오는 계절에 문득 생각나는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를 회상하는 곳이다. 피아노는 필요한 모든 화음을 치면서도 무겁지 않게 섬세하고 세월의 덧없음과 추억의 아픔을 상기하는 가사에 맞게 주 선율과 합창이 적절히 익어 감성적이되 감상적이 되지 않았고 낭만적이되 통속이 되지 않았다.

 

가곡으로 작곡한 곡이지만 대중의 사랑을 너무 받아 가요처럼 불리는 노래가 있다. 신귀복의 <얼굴>이 그렇고 황진이 시 김성태 곡의 <꿈길에서>가 그렇다. 금번 연주회에서 초연되는 작곡가 자신이 시를 쓴 <내가 너에게>도 그런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 탄탄한 음악적 구성 위에 흐르는 사랑의 고백은 솔직하며 헌신적이다. 특히 남성합창으로 불려질 때 남성男聲의 부드러움과 섬세함이 부각될 수 있을 것이다.

 

1983년 제3회 MBC 대학가곡제의 대상곡은 세상에 알려지자마자 한국의 바리톤들이 가장 사랑하는 레파토리가 됐다. 작곡자는 당시 대학 4학년인 신동수였고 노래를 부른 이는 당시 대학3학년인 바리톤 고성현이었다. 대상 수상곡은 <산아>. 아버지 신홍철 선생의 시에 아들 신동수가 곡을 붙인 것이었다. 신홍철 선생은 1923년 함경도 안변 출생이며 1951년에 월남하였다. 언론인으로 활동하면서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노래한 시집을 발간하였다 <산아>는 첫 번째 시집 <고향에 부치는 노래>의 무게추 역할을 하는 시였다. 아버지의 고향 안변, 그리운 산 황룡산에 대한 비통함은 아들의 손에서 웅장하면서도 애절한 가곡으로 탄생했다.

곡은 크게 3부분으로 구성됐다. 처음은 낮지만 묵직한 어조로 고향의 산을 부르는 것으로 시작한다. 풀피리 소리 같은 간주 후 내가 죽어서도 놀아올 보금자리여...”감정은 격앙된다. 그리고 다시 Moderato Cantabile(적절한 빠르기로 노래하듯이)의 피아노 간주가 이어지며 선연한 고향의 산이 눈시울 뜨거운 가운데 드러난다. 그 산을 떠나왔다. 시인은 절규한다. 노래도 그렇다. “잘 있거라, 잘 있거라, 산아, 산아...”

한국가곡 <가고파>가 잊혀진 고향과 가버린 세월에 대한 아쉬움을 노래한 절창이라면 <산아>는 전쟁의 상흔과 다시는 돌아갈 수 없을 것이라는 절망감에 더욱 그리워 울부짖는 노래이다.

평화의 시대에 대한 희망이 보이는 시절이다. 그러나 우리 아버지들의 실향과 그로 대표되는 민족의 비극을 어떻게 치유할 수 있단 말인가? 한 인생의 그리움으로 대표되는 노래를 불러 민족과 역사의 비극을 생각한다.

 

 

Sanctus (Aus der deutchen Messe Ⅱ)

Franz Schubert

 

거룩, 거룩, 거룩. 주는 거룩하시도다.

거룩, 거룩, 거룩. 주님 홀로 거룩하시도다.

그는 시작도 없으시며 언제나 계신 주로다.

영원히 지배하시는 이시며 언제나 변치 않으실 주시라!

거룩, 거룩, 거룩. 주는 거룩하시도다.

거룩, 거룩, 거룩. 주님 홀로 거룩하시도다.

놀라운 전능의 주! 사랑의 주! 어디든 계시는 주로다.

거룩, 거룩, 거룩. 주는 거룩하시도다.(독일어 가사 해석)

 

문학에서 괴테와 실러, 음악에서 모짜르트와 베에토벤으로 대표되는 고전주의 시대는 미의 기준을 보편적이고 이상적인 궁극적 미를 지향하는 데 반해 문학에서 횔덜린, 호프만, 음악에서 슈베르트, 멘델스존, 슈만 등으로 대표되는 독일 낭만주의 시대는 민족주의적이고 동화적인 요소를 중시하였다.

오스트리아 빈에서 태어난 프란츠 슈베르트(1797~1828)는 라틴어를 쓰는 통상 미사와 달리, 독일 낭만주의의 선구자답게 이 곡을 그의 모국어인 독일어로 썼다. 물리학자인 노이만이 쓴 이 곡의 독일어 가사는 전례미사곡과 비슷하지만 다르다. 낭만주의 시대의 물리학자답게 통찰은 우주적이며 언어적 감수성은 직관적이다. 문법을 넘어선 단어의 운용은 그래서 한 층 인간의 언어를 넘어서려 하고 있다.

곡명은 라틴어인 Sanctus라 명하고 “거룩하시다”를 세 번 반복하여 삼위일체를 나타내는 것과 내용의 전체적 대강은 같지만 독일어의 거룩하다는 뜻인 'Heilig'로 시작하여 발음음성학억인 면에서 보다 독일적 숭고함을 표방한다. 소년 시적부터 합창단에 몸담아 왔고 독일 민요에 익숙하며 독일 가곡의 내용적 형식적 완결을 희구한 슈베르트의 독일적 종교 합창의 궁극적 이상을 담고 있는 곡이다.

 

 

스텐카 라진

러시아 민요/신동수 편곡

 

스텐카 라진은 카자흐 지방의 자유 부농으로, 1649년에 러시아 황제(Czar)가 제정한 농노법의 실시에 항거하여 볼가강 유역 카자흐지방에 집결한 무산 농민들의 우두머리였다. 스텐카 라진은 이들을 지휘하여 카스피에 연안과 볼가강의 조운선을 습격하였고 급기야 세력이 커져 인근 페르시아를 정복하기도 하였다. 전쟁이 만들어낸 운명적 만남으로 페르시아 공주와 사랑에 빠지나 그로 인해 혁명적 투쟁이 무뎌진다는 동지와 부하의 충고를 받자 사랑하는 여인을 볼가강에 빠뜨려 죽이고 다시 투쟁에 전념한다. 그는 동료의 배신으로 1671년 체포돼 사지가 찢기는 형벌을 받는다.

계급과 투쟁과 동지를 위해 사랑을 희생하고 싸움터로 간 스텐카 라진의 행동을 찬양하는 이 음악은 스토리텔링의 힘과 유장하고 깊은 러시아 음악적 특유함이 어우러진 대표적 러시아 민요다.

해방 이후 한국에서 교과서에 실릴 만큼 대중적인 곡이었으나 러시아 민요라는 점과 무산계급의 투쟁을 다룬다는 점에서 남한에서 금기시되는 곡이 된 이곡은 1980년대 백계 러시아 군인의 합창단인 돈 코사크 합창단의 음반이 국내에 들어오면서부터 다시 알려지고 자유롭게 공적인 자리에서 불려지게 됐다. 이미 많은 남성합창단이 다룬 이곡인지라 다시 남성합창곡으로 편곡한다는 것은 큰 부담일 수 있으나 작곡가 신동수가 자신만의 남성합창 편곡을 통해 재해석하여 보다 입체적이고 자연스러운 변화를 통해 큰 불결의 굽이와도 같은 흐름을 보여주었다.

 

 

 

Nearer My God To Thee

원곡 작사 Sara F. Adams/작곡 Lowel Mason

편곡 James Stevens

“내 주를 가까이 하려 함은 십자가 짐 같은 고생이나...”

이렇게 시작하는 본 공의 원 찬송은 너무나 유명하다. 이 찬송시를 쓴 사라 플라워 아담스는 영국 할로우에서 태어나 배우와 극작가로서 큰 성공을 했다. 하지만 건강 때문에 완전히 모든 것을 포기하고 집에서 시를 쓰는 일에만 전념해야 했다. 실의에 빠진 그녀는 우연한 기회에 창세기 28장에서 형을 피해 도망가던 야곱이 꿈에서 하나님을 만나는 부분을 읽고 이 시를 쓰게 되었다. 비록 그녀는 43세의 젊은 나이로 숨을 거두었지만 이 찬송만큼은 아직까지도 많은 이들에게 감동을 주고 있다.

영화화돼 유명해진 타이타닉 사건 때 그 아비규환의 현장에서 구명정을 포기하고 이 곡을 연주한 악장 이하 악단원들의 이야기도 유명하거니와 미국 25대 대통령 윌리엄 맥킨리가 흉탄에 맞아 죽어가는 순간에도 애창하는 곡이었다고 한다.

James Stevens는 이렇게 잘 알려진 곡을 영어 원 가사와 라틴어 가사가 혼용된 합창곡을 썼다. 언어뿐 아니라 파트 구성에서도 솔로와 선도 합창이 먼저 나오다가 전체 합창과 함께 어우러지는 가운데 종교적이고 음악적인 강정의 고양을 느끼도록 하였다. 원곡 가사와 멜로디의 순수함에 라틴어 가사와 합창 편곡이 신비스럽고 장엄한 면을 더 해주며 솔로는 현대적이면서도 세속음악적 요소를 차용하였으나 오히려 시간적 제약과 세속적 굴레를 벗어나는 역설적인 움직임을 보여준다.

 

주여 당신께 더욱 가까이 갑니다. 비록 그 길이 나를 달아매는 십자가일지라도.

거기서 내게 길을 보여 주시고 천국 계단이 드러나게 하시네.

주님이 내게 주신 모든 것은 은혜로 주신 것입니다.

진정 내가 부를 모든 찬송은 ‘주여 당신께 더욱 가까이 갑니다, 더 가까이 갑니다’입니다.

그 길이 험한 나그네 길이고 해가 없이 암흑이 나를 덮어도 나는 돌 베개 베고 잠들 것입니다.

천사들이 나를 부릅니다. :주께로 더 가까이, 주께로 더 가까이...“

기쁨의 날개를 타고 하늘로 오를지라도 해도 달도 별도 잊고 오직 저 높은 곳으로 날아가겠습니다.

(영문가사 부분 해석)

 

죽음의 순간에 이르러도 나의 모든 능력이 하늘로부터 오리니

주께서 나를 도우사 두려울 것 영영 없도다.

주여 우리를 좁은 길에서 높은 곳으로 이끌어 주소서

별에 닿는 길처럼, 저 높은 곳을 향하여

(라틴어 가사 부분 해석)

 

 

아지랑이

윤곤강 시/최병철 곡/나영수 편

 

머언 들에서/부르는 소리/들리는 듯

 

못 견디게 고운 아지랑이 속으로 /달려도 /달려가도/소리의 임자는 없고

 

또다시/나를 부르는 소리/머얼리서 /더 머얼리서/들릴 듯 들리는 듯.....

 

3연으로 구성된 윤곤강(1911~1949)의 시를 소재로 한 작곡가이자 지휘자인 최병철이 곡을 붙이고 한국합창의 어법을 확립하는 데 천착해온 지휘자 나영수가 편곡한 곡이다.

일제 강점기 카프에서 활동할 정도로 현실 문제에 관심이 많았던 윤곤강의 평소 암울햇던 시 게계와는 약간 다른 이 시는 이른 봄 일렁이는 아지랑이에 빗대 내면과의 흐릿한 조우遭遇를 짧고 길이와 쉬운 서정적 시어의 활용을 통해 나타내는 문학적 센스를 보여준다. ‘부르는 소리는 어언 들에 있고 달려가도 실체는 잡히지 않는다. 실체를 알아내는 걸 포기하려 하면 다시 들린다. 식민지 시대 지식인이 내비치지 못하는 심사와 설 곳을 마련하지 못하는 자신의 철학적 기반과 그러면서도 무언가 내면의 소리를 듣기는 들었으되 구체적인 심상으로 잡지 못하는 능력을 한탄하는 시적 토로로 보이기도 하지만 작곡가는 이를 서정적 묘사로 단정하고 음악적 옷을 입혔다. 느리지만 쉼 없이 일렁이는 각 파트와 반주의 움직임과 반음계의 사용으로 시와 음악이 소재 면에서 일치하였다.

 

가고파

이은상 시/김동진 작곡

국어학자이자 시인, 문필가인 이은상이 고향 마산을 그리워하면서 쓴 10절의 시를 한국가곡의 1세대 작곡가로 수 많은 아름다운 가곡을 써낸 김동진이 만 20세 된 1933년에 쓴 곡이다. 약관의 젊은이가 쓴 곡이라 볼 수 없을 정도로 정돈되고 세련된 곡은 차라리 중후하다고 할 수 있다. 김동진은 이 곡을 1933년에 4절까지 쓰고 40년 후에 나머지 6절을 완성하였다. 그래서인지 이 가곡 합창은 전편과 후편으로 나뉜다. 창작 기간만을 놓고 본다면 괴테의 파우스트에 빗댈 수 있는 기간이다. 그 40년 동안 김동진의 공간 한국은 변하였다. 일제의 압제 밑에 있던 조국이 해방되고 참혹한 전쟁을 거쳐 산업화를 지나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전편에서 주제부 반주는 웅혼한 가운데 애상적 분위기가 감돌고 있으나 후편의 반주에는 마치 못질하는 듯한 반주가 들어가 산업화의 조국을 나타내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사회적 배경을 빼고서라도 이 곡은 음악적 완성도가 높다.

이은상의 시가 제시하는 시각적 이미지를 탄탄한 멜로디가 채워주고 있으며 3/4, 4/4, 5/4박자의 변화 속에서도 주제와 음악적 흐름이 자연스럽다. 더하여 시가 주는 고향에 대한 그리움의 강도는 음악 속에서 멀미가 날 정도로 파닥거린다. 시와 음악 양면에서 한국인의 고향에 대한 그리움의 원형질을 이처럼 잘 캐낸 곡은 드물다고 본다.

 

자진방아 타령

김희조 편곡

자진방아타령은 경기민요이다. 민요이지만 대중들이 노동하면서 부른 노동요가 아니라 전문 예능인들에 의해 불려졌던 “창唱 민요”에 속하는 곡이다. 보통 방아타령에 속해 ‘긴 방아타령’, ‘사설방아타령’을 먼저 부르고 난 뒤 부르는 것으로 묶여진 곡이었다고도 하지만 독립된 곡으로 부르는 경우가 많아졌다. 메기는 소리인 독창보다 받는 소리인 제창이 길고 세련되게 부른다. 제창 부분은 "아하 에이요"로 시작하는 것과 "에라디여"로 시작하는 것의 2 가지를 번갈아 부른다.

이 노래의 가사는 정월에서 5월까지 월별로 내용이 있는 월령체로 되어 있고, 그 이하는 연·종달새·바람개비처럼 하늘에 떠 있는 물건이나 새 따위를 노래하고 있다. 장단이 4박자인 정격장단이고, 처음의 속도를 끝까지 유지라며 각 절의 끝나는 음들이 모두 ‘도’로 끝나 다른 곡들보다 음악적 통일성이 있어서 전문 예능인들이 불렀다는 설을 뒷받침하기도 한다. 경기민요지만 가사에 ‘장안사’, ‘강원도 영천읍’ 등의 가사가 있어서 강원도와 연관이 있는 점은 보다 많은 연구를 필요로 한다.

재미있고 구성진 이 곡은 민요를 채보하여 합창곡으로 남기는 작업을 통해 한국 음악에 큰 족적을 남긴 김희조 선생(1920~2001)의 합창편곡이다. 김희조 선생은 은행원 출신이지만 피아노, 작곡법, 대위법 등을 배우고 음악인으로 활동하였으며 서울국악에고 상사로 재직하면서 국악에 눈을 뜨게 됐다. 군악대와 방송국 오케스트라를 거치고 국악과 서양음악에 걸친 넓은 음악적 스펙트럼을 갖춘 그 덕분에 한국 합창은 국악과 서양음악의 만남을 보다 용이하게 펼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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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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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사부님의 댓글

태사부 작성일

마냥 질러대던 소리에 혼을 불어 넣게하는, 연주자 들에게 참으로 소중한 곡 해설입니다. 이젠 생명이 숨쉬는 노래로 격상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