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 아버님, 편히 가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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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정수구
댓글 0건 조회 6,645회 작성일 09-06-02 1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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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님, 편히 가십시오.




아들의 못난 선배를 언제나 반겨주시던 웃음이 생각납니다.

신중이 따라 늦은 밤 찾아가서 자려면 안방으로 들어오라 하시고

장농 깊이 감추셨던 미주를 꺼내 주시고 밤새 얘기 들려주신 것


기억 많이 납니다


제가 많이 아팠다가 좀 나아가면서 신중이를 만나 댁에 갔을 때도

비장의 술을 하사하시면서 이것 먹고 나쁜 기운 다 없어지라 하셨습니다.

환자에게 술은 금기였지만 아버님이 주신 마음의 약으로 알고 먹었습니다.


그렇지만 아버님이 병상에 계실 때 저는 물 한 모금 따라 드리지 못했습니다.

불초한 저를 용서해 주십시오.


이제는 아버님의 고담과 준론을 더 듣지 못하겠지요.

장위동 골목을 지나 술 한 병, 안주거리 하나 들고 아버님 뵈오러 가던 길은

이제 다시 걸을 수 없는 길이지만

후일 아버님 따라 가서 천국에서 한 잔 마음의 미주를 바치겠습니다.



많이 아프셨으니 그곳에서 훌훌 좋은 벗들과 즐겁게 지내십시오.

아버님, 존경하고 감사하단 말씀 미처 못 드렸습니다.

존경합니다.

감사합니다.

편히 쉬소서....




불초 수구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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