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담만유 3. 냄비 속의 다국적군-부대찌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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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정수구
댓글 0건 조회 3,162회 작성일 09-10-21 2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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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두천의 대표적인 먹거리, 혹은 동두천이란 지명을 듣고 생각나는 음식이라면 부대찌게를 꼽을 수 있다.

 


 그래서 나도 간단하지만 가장 처음으로 부대찌게를 들어 이 얘기를 본격적으로 시작하려고 한다.


 혹자는 부대찌게를 국적불명의 음식이라고 하고 먹거리에는 속하나 진정한 의미의 요리가 아니라고 한다. 그저 아무 생각 없이 먹고 살기 위해 미군부대에서 나오는 갖가지 음식을 김치 같은 우리 음식하고 버무려 식중독을 막기 위해 한참을 끓여낸 음식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그런 얘기를 하는 이들은  매우 고아한 천상의 복숭아나 광야의 만나, 혹은 은쟁반에 모시 수건이 깔린 정찬만을 음식으로 보는, 진정한 의미에서 덜 떨어진 작자라고 치부하고 싶다.


 


 음식이란 인간의 인문적, 사회적, 지리적, 심리적 양태가 그 바탕에 깔려 있는 소산이다.


 짐승의 창자에 별의별 것을 다 집어넣고 오래 상하지 말라고 벚나무 장작 연기에 그을린 소세지는 독일(이 소세지 비슷한 음식은 전 세계에 분포하고 있으나 독일만을 예로 든다.) 민족을 대표하는 영양 만점 맛 그만의 음식이다. 햄버거는 요리가 아닌가?


 


 일본 전국시대의 무사들이 하루 종일 싸우는 준비를 하느라 만들었던 병량환이란 음식은 오늘날 일본이 저장음식이나 도시락 음식의 천국이 되는 데 일조를 한 것이다.


 


 대부분의 음식은 그 기원을 절박한 생활의 필요에 두고 있다. 그러므로 부대찌게도 그 절박한 기원보다는 거기에 비친 우리 삶의 모습을 볼 필요가 있으며, 또 부대찌게가 굶어죽지 않기 위한 뭄부림에서 우리 입맛을 돋우는 음식으로 변모한 것을 인정해야 한다. 그렇기에 부대찌게는 더욱 살가운 음식이며 우리 현대사가 그대로 투영된 음식이다.


 


 부대찌게, 이는 진실로 동양과 서양이 만나는 음식이다.


 


 영국의 시인 키플링이 "동은 동이요, 서는 서다. 이 둘이 절대 만나지 못할 것이다"라는 말을 남겼지만 부대찌게는 영국의 이 거만한 신사를 비웃기라도 하는 양 냄비 속의 실크로드를 이루어 낸다.


 


 부대찌게의 역사는 장구하다.


 


 미군이 이 나라에 주둔하기 시작한 지가 어언 63년이다. 그러나 그 즉시 이 문제의 먹거리가 나타났을 것 같지는 않고 아마도 1.4후퇴 이후 실향민과 전쟁고아들이 본격적으로 양산된 1951년 이후일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헤아려 보아도 거의 57년의 역사이다. 햄버거나 핫도그 등의 음식이 19세기 말 파리 만국박람회를 기점으로 하는 것은 믿거나 말거나 상식인데 이들 서양의 먹거리와 비교해도 거의 반 정도 되는 역사다.


 


 정말로 비참하고 가난한 시절이었을 것이다.


 


 하루하루 고단한 생을 영위하기 위해서는 먹을 것이 있어야 했다.


 이 먹을 것이 가장 많은 곳이 바로 미군부대였을 것이다.


 


 미군부대에서 일하던 일용 노무자, 경비, 세탁부, 슈샤인보이 등 어떤 형태로든 U.S. Army와 연결된 사람들은 당당히 얻어내든 구걸하여 빌든, 훔치든 이 미군들의 먹거리를 얻어내느라 혈안이 됐을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먹다 남은 것들도 소중히 싸왔을 것이다.  (우리 역사에 우리 조상들이 외국 주둔군의 먹다 남은 것을 먹은 기록은 두 번이다. 하나는 이 처참한 한국전쟁 중이었고 다른 한 번은 1592년 발발한 조선-일본 전쟁이었다. 유성용 선생이 쓴 징비록에 보면 당시 조선을 도와 주러 참전한 중국 명나라 군대의 군인들이 술에 고기에 밥에 잔뜩 먹고 토하자 그 토사물에 우리 백성이 달라붙어 먹었다는 지옥도와 같은 상황이 묘사돼 있다.)


 


 이렇게 얻어 온 미군의 먹거리는 드럼통이건 양철밥통이건 하여간 담을 수 있고 끓일 수 있는 모든 것에 옮겨져 김치나 짠지 쪼가리, 우거지, 시래기, 나물 등 넣을 수 있는 모든 것들을 넣어서 팔팔 끓여졌을 것이다.


 이 끓여진 수프 상태의 음식은 두 가지로 분류된다.


 하나는 고급으로 쳐 주는 부대찌게로 그래도 먹을 만한 것들을 넣고 끓여낸 것이다.


 


 또 하나는 꿀꿀이 죽이다.


 여기는 정말로 별의별 재료가 다 들어간다. 레몬껍질, 사과껍질은 양호한 편이고 양파껍질, 양배추의 거죽을 벗겨낸 것, 정말 씹다 버린 질긴 고기 부위, 감자튀김 그것도 케찹을 묻혀 놓고 안 먹은 상태로 버린 것, 먹다 남은 치킨, T-본 스테이크의 뼈.....  먹다 남은 것, 먹다 버린 것, 먹지 못해 버린 것, 먹기 전에 제거된 것, 불행 중 다행으로 약간 유효기간이 지나 그냥 내어 놓는 것 등등 거의 음식 쓰레기 수준의 재료들이 혼연일체의 마음가짐으로 드럼통 속에 들어가 너, 나의 구분 없이 물이라는 매개체에 의해 끓여지고 불려진 것이다.


 사람이 차마 먹을 수 없어 돼지가 먹는 것이라는 뜻의 꿀꿀이 죽이라고 작명이 됐으나 그래도 명나라 군인들의 토사물보다는 한결 나은지라 그래도 개똥밭에서 굴러도 이승이 좋다는 심정으로 이것을 먹고 내일의 희망을 불태운 민족이 우리 민족이다.


 그러나 이 꿀꿀이 죽은 시절이 나아짐에 따라 제 이름에 걸맞는 고객의 입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부대찌게만은 계속해서 즐겨 먹는 음식으로 남게 됐다.


 


 이 부대찌게의 이름은 다양하다.


 장삼이사, 갑남을녀, 철수 영희... 뭐 이런 이름 처럼 미국 머슴아이의 이름을 무작위로 집어내어 존슨탕, 톰슨탕으로 불리기도 했고 G.I 찌게라는 세련된 명자를 지니기도 했다. 그러나 구한말 황궁과 개화 신사들 사이에서 급속히 퍼진 커피라는 음료가 가배차(이건 한자로 소리나는 음을 표기한 가차), 양탕국, 손튼차(당시 조선호텔의 여자 지배인 이름), 베베르탕(당시 주한러시아공사) 등에서 원래의 이름인 커피로 통일되듯이 모든 문패가 "부대찌게"라는 명자로 일제 귀속됐다.


 


 내가 어릴 때 동두천 역 부근 미2사단 후문 앞에는 넉넉잡아 10여 군데가 넘는 부대찌게집이 있었다. 뿐만 아니라 꽤 비싼 경양식집들도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당시 캠프 캐시라 불리는 미2사단 본영에 주둔하는 미군의 수가 많았고 이들이 영외거주를 선호했고 또 미군부대와 관련돼 이 곳을 통해 드나드는 한국인들이 많았으며 또 미군부대에서 빠져나오는 육류 등 음식 재료가 많았음을 반증하는 것이리라.


 나는 이곳이 정말 맛있는 부대찌게의 원조 동네라고 본다.


 그 러나 지금은 모두 없어지고 단 한 집만 남아서 영업을 하고 있다. 식당의 옥호는 스마일 식당이다. 예전의 재료가 끊겨서인지 옛날 맛이 그대로 난다고는 못하지만 그래도 원조에 가까운 집이며 원조 동네에 아직까지 남아서 장사를 하는 집이니 뭔가 쌓인 내공이 있을 것이다. 


 


 창말 블루스 2편에서 의정부 부대찌게가 원조와 다른 점이 재료가 다르다고 했는데, 정말 부대찌게에 어떤 재료를 썼는가는 중요하다.


 


 요즘은 국산 소세지도 잘 나오는 모양이다.


 생선가루며 별 희한한 것들을 버무려서 뻘건 색소로 고기 기분을 내서는 소세지라고 팔던 1970년대 진*햄 소세지며 프*크 소세지에 비하면 훨씬 나아진 것이고 미제에 비하여 손색이 없지만 그래도 부대찌게를 하려면 옥수수가 그려진 미제 소세지가 들어가야 원조의 맛이 산다.


 그리고 이미 조리가 끝난 재료가 들어가야 한다.


 닭튀김, 베이컨, 스테이크 등이 조리가 끝난 상태에서 사람의 입으로 들어가지 않고 용하게 살아남아 다시 부대찌게 재료로 들어가야 제 맛을 낸다. 보산동에서 파는 치킨라면이나 불고기 라면도 이미 튀긴 닭을 튀김 옷과 함께 잘게 찢어 넣거나 조리가 끝난 불고기를 넣는데, 아마도 이렇게 하여야 보다 복합적인 맛을 내기 때문이기도 하겠고 또 삶기 전에 이미 굽거나 튀긴 조리 과정을 거친 재료만이 가진 무언가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빠질 수 없는 것이 햄이다. 요즘은 스팸을 주로 쓰는데, 스팸이 가진 독특한 맛은 나도 인정하는 바이고 스팸이 부대찌게에서 차지하는 위치는 정부내각의 내무부 장관이나 법무부 장관 격으로 빠질 수 없는 위치라고 하겠다. 그러나 내가 말하는 것은 진짜 햄이다. 돼지의 대퇴부를 소금으로 염장하고 벚나무 장작 연기에 훈연시킨 햄이 들어가야 부대찌게의 풍미를 살릴 수 있는 것이다.


 


 거기 말고기가 들어가면 더 없이 좋다.


 원래 기마민족이던 몽고족이나 우리나라 사람들은 말고기 육회를 잘 먹었다고 한다. 이것이 훈족과 몽고족이 약 7~800년의 간격을 두고 유럽을 치면서 그들의 음식문화가 러시아로 넘어가서 유목민들의 대명사인 타타르족의 이름을 따서 타르타르 스테이크로 전해지게 된다. 우리가 먹는 육회마냥 그 위에 계란 노른자 같은 고명을 얹기도 하는 요리인데 이것이 발전하여 햄버거 스테이크가 됐다는 얘기도 있다.


 하여간 우리 사촌들이 중앙아시아랑 유럽에서 깽판치고 다닐 때 얌전하게 중국의 명사들을 천하 다시 없는 성인으로 모시고 농경민족화된 우리들은 제주도나 북쪽 지역 일부, 그리고 일부 미식가들을 제외하고 말고기를 터부시하는 경향이 생겼다. 그러나 이 말고기 스테이크나 말고기 햄은 미군부대에서 꽤 많이 소비됐다. 이것이 실제 말고기인지 아니면 한국인들이 정체불명의 고기라서 말고기라고 칭했는지는 미스테리이나, 어릴 때 먹어본 경험과 우리 아버님의 산 증언을 통해 진짜 말고기라고 본다.


 하여간 이 말고기가 들어가야 한다.


 그리고 아까도 언급했던 햄버거 스테이크나 햄버거 패티가 들어가면 더욱 좋다.


 


 요즘 이런 재료를 다 넣어서 부대찌게를 조리하려면 부대찌게 가격이 아마 중국요리집의 불도장 (사슴의 힘줄, 생선 부레, 말린 해삼 등 진기한 재료를 항아리에 넣고 봉하고는 뭉근한 불로 중탕해서 오래도록 고은 요리인데, 얼마나 냄새가 좋던지 도 닦던 스님이 담장을 넘어서 달려들 만큼 맛있단다. 음식계에선 지족선사를 파계시킨 황진이 수준이라고 할까?) 가격을 넘나들 것이다.


 


 그리고 치즈를 빼 놓을 수 없다. 그렇다, 이 치즈 한 장에 진한 국물맛이 좌우된다.


 그러나 이것은 단지 냄비에 입력되는 서양종자들만을 꼽은 것이다. 이것만 가지고는 부대찌게의 끝을 말하기에는 이르다.


 


 여기 가장 한국적인 음식 재료인 김치가 들어가야 한다.


 


 햄이건 소세지건 하나라도 빠질 수는 없지만 김치가 빠지면 그런 부대찌게가 될 수 없다. 서양종자들의 묵지근하고 기름진 맛이 김치로 인해 산뜻해진다. 아마도 부대찌게가 처음 나왔을 때는 약간 맛이 간 다른 식재료의 냄새를 지우기 위해, 그리고 이 서양 음식에 아직 익숙지 못한 입맛을 재우기 위해, 다른 재료가 없어서.. 등등 여러 이유로 이 김치를 넣었겠지만 이 김치가 부대찌게를 비로소 부대찌게로 만들어 내는 것이다.


 


 옛날 한국인들에게 시큼한 김치찌게냄새, 고릿한 마늘 냄새가 난다고 놀리던 외래종자들이 이제는 김치에 맛을 들이고 있는 걸 굳이 들지 않아도 김치는 신비스런 음식이다. 김치는 와인과도 잘 어울리고 어떤 식재료와도 어울려 그 시큼하고 콤콤하고 매운 맛을 낸다. 면과도 잘 어울리고 볶음밥에도 잘 어울린다. 그전에 외국 친구들에게 김치로 만든 스파게티를 선 보여 절찬을 받은 적도 있다.


 


 이 김치에 언제나 장수 식품, 정력식품, 건강식품의 웃자리를 차지하는 마늘, 대파, 양파가 들어가고 고춧가루 등 갖은 양념이 들어간다. 두부도 좀 썰어 넣고...


 


 이렇게 여러 국산 종자와 서양 종자를 한데 넣어 끓이면 부대찌게가 나오게 되는데, 그 맛이 가히 좋다. 


 


 지금은 의정부 부대찌게 골목이 특화되는 바람에 동두천의 부대찌게 집들이 제대로 원조 대접을 못 받는 모양인데, 동두천에도 훌륭한 부대찌게 집들은 꽤 있다.


 


 원조 동네라고 얘기했던 후문 앞에 스마일 식당이 있다는 얘기는 이미 했고 또 오래된 집으로는 동두천 중앙역에서 신천교로 가는 길 어수동 사거리 부근에 실비집이 있다. 맛은 좀 밋밋하지만 깊은 맛이 있다. 이 집은 꽤 오래된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런 깊은 맛을 내기는 쉽지 않다. 어떤 분들은 이 집의 부대찌게가 별로 맛이 없다고 하시는데, 아마 자극적인 맛이나 조미료에 길들여진 입맛에는 맞지 않을 것이다.


 


 서울병원 사거리에 있는 호수식당의 부대찌게는 매운 것을 좋아하는 분들의 입맛을 끌 것이다. 이 호수 식당의 부대찌게 재료는 그래도 원형에 가깝다. 소주를 좋아하는 양반들은 부대찌게뿐 아니라 부대볶음이란 메뉴를 추천하고 싶다. 


 


 동두천역에서 소요산 방향으로 한 5분 정도 되는 길에 유정 부대찌게 집이 있는데, 이 집도 밥 두어 그릇을 게눈 감추듯 먹게 만드는 묘한 맛이 있다. 이 집은 부대찌게 말고도 솥뚜껑이라는 독특한 메뉴로 유명하다. 솥뚜껑이라 하면 서울 촌사람들은 솥뚜껑 삼겹살로 알겠지만 이는 솥뚜껑을 뒤집은 것 같은 움푹하고 두꺼운 용기에 베이컨을 툭툭 썰어 올려 볶아 먹고 그 기름이 가운데로 모이면 여기에 감자, 만두, 양파 등을 볶아 먹는 음식이다. 지금은 베이컨이나 베이컨에서 나오는 기름이 죄인 취급 받지만 오히려 돼지고기 기름은 몸에 긍정적인 효과를 끼칠 수 있다. 폐에 좋고 피부노화를 예방한다. 과하게 매일 먹지 않으면 한 번씩 즐길 수 있는 음식이다. 이 집 말고도 구시가지 소방서 자리 근처에도 이 솥뚜껑 요리를 하는 집이 있다. 이 집이 원조라고 하기도 한다. 부대찌게와 더불어 이 솥뚜껑도 특화시킨다면 지역의 특색있는 음식으로 밀어줄 만하다.


 


 옛날(이거 지리를 설명하자면 자꾸 옛날 타령을 하게 되니 짜증 되게 난다.) 국민은행에서 경기은행(없어진 지 오래 됐으니.... 가만 있자...  동광극장 방향이라고 해야 하나?)쪽으로 조금 가다 보면 오른 쪽에 전주 콩나물 식당이란 곳이 있다. 간판 처럼 콩나물 국밥을 잘하고 반찬도 실하고 싸고 공기밥도 고봉으로 머슴밥으로 해 주는 집이다. 이 집은 다른 음식도 잘 하지만 부대찌게 재료를 거의 원형에 가깝게 밀수(?)하여 끓여내는 집이다. 짠 맛이 강하게 나는 점만 보완한다면 최고의 맛집이라 할 수 있다. 아마 이미 최고의 맛집일 수도 있다. 내가 워낙 짠 맛에 민감하므로.


 


 내가 가장 잘 가던 집은 유림호텔에서 소요산 방면으로 가다가 보산역 근처 우체국 사거리에서 우회전했다가 바로 왼쪽 골목으로 접어들면 왼쪽으로 미용실과 부동산이 보이고 바로 부대찌게라는 글씨가 써진 작은 식당이다.


 모두 열댓에서 스무 명이나 들어갈 수나 있을까 싶은 식당이었다. 이 집의 부대찌게는 어릴 때 먹었던 부대찌게의 풍미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 집의 양갈비는 정말 환상적이었다. 여기서 ....이었다 라고 말하는 것은 전에 가보니 예전에 내던 갈비의 부위가 아니라 등뼈 쪽의 부위가 나오고 맛도 틀려졌기 때문이다. 양갈비란 양의 갈비가 아니라 돼지를 도축하는 과정에서 우리와는 다르게 발굴된 갈비의 부위라고 해서 "양"자를 붙인 것이다. 부대찌게맛은 지금 어떤지 모르겠다. 그 때 한 번 실망하고는 다시 찾지 않았으니까. 그러나 다시 이 집의 양갈비와 부대찌게가 맛을 찾을 것으로 기대한다.


 


 사람들은 자기만의 비밀을 간직하고 있는 것을 좋아한다. 맛있는 집을 알고 있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을 간작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맛있는 집이 그 맛을 잃어버렸거나 문을 닫았다면 나 같은 식도락가들에게는 사형선고와 방불한 것이다. 그러니 이런 기대라도 갖고 살아야지.


 


 동두천의 맛집들, 특히 부대찌게의 탄생을 간직한 지역에서 부대찌게를 손님들에게 내는 집들을 다 돌아 보지 않아 몇 집만 읊었지만 나는 동두천의 모든 부대찌게 집들이 경쟁하듯이 맛있는 부대찌게를 만들어 동두천의 어른들에게는 옛 고생하시던 때를 떠올려 드리고 외지인들에게는 진짜 동양과 서양이 어우러진 냄비 속의 다국적군의 면모를 보여주었으면 한다. 그리고 지역의 오래된 식당들이 지역민들에게 사랑 받았으면 좋겠다.


 지금 조성된 지 몇 해 되지 않은 신시가지에는 많은 식당이 있다. 그러나 진정 맛집은 많지 않다. 그런데 이 식당들에게 맛집들이 밀리고 있다는 것은 동두천 시민들의 입맛의 수준이 떨어지고 있음을 나타내는 것이라 하겠다. 자존심 상하는 일이다.


 


 


P.S:


 여기 제 싸이를 방문하여 글을 읽어 주시는 고객님들 감사합니다.  


 그런데 연재를 시작하면서 말씀드렸다시피 저는 이 글을 씀에 있어서 절대 인터넷 등 관련 자료의 도움을 받지 않으려고 합니다.


 제 추억과 기억을 다칠 염려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와 비슷한 이유로 이 글에 제시되고 인용된 문구나 역사적 사실을 비롯한 인문학적 지식도 제가 현재까지 머리 속에 지니고 있는 부분만을 이용하려고 합니다.


 제 나이 마흔, 인문학을 전공했습니다.


 이 글을 쓰면서 저의 지식의 한계를 더 느끼고자, 그리고 제 상식의 범위를 감당해 보고자 이 글을 쓰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글은 오로지 제 만족을 위하여 쓰는 글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기억에 오차가 있거나 잘못된 지식을 개구라처럼 설파하는 우를 범할 수도 있습니다만 그래도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꾸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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