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담만유 10. 라면의 업그레이드, 보산동 뿌리식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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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면의 업그레이드, 보산동 뿌리식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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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면은 이제 우리 생활에서 뗄래야 뗄 수 없는 음식이 되었다.
라면의 용도를 살펴 볼까?
먼저 가난한 서민들의 한 끼 식사다.
어떤 육상 선수는 라면을 먹고 뛰었다는 교묘한 신문 기사 덕에 유명해지기도 했지만 한 동안 라면과 가난은 서로 연결고리가 강한 단어들이었던 것이 확실하다.
또 비교적 단순한 조리법 때문에 혼자 사는 고학생, 홀아비, 밥 짓기 싫어하는 아주머니들, 집에 남겨진 아이들이 간편하게 먹을 수 있는 음식이다. 군인들이 병영에서 야식 생각이 간절할 때 라면 봉지에 스프 가루를 뿌려서 뜨거운 물을 붓고 스팀이나 보일러 관 옆에 두어 먹는 일명 “뽀구리”도 그 편의성의 산물일 것이다.
우리 입맛에 맞게 제조된 지라 해외여행을 가는 여행객들의 행장에는 의례 이 라면이 들어가 있기 일쑤다.
그러나 라면은 맛있다.
그 얼큰한 국물 맛과 쫄깃한 면발은 라면을 단순한 열량 공급원이 아닌 식도락의 대상으로 변모하게끔 하기도 했다. 밤 늦게 소주 생각이 날 때 라면은 훌륭한 안주 역할을 해내기도 한다. 겨울 밤 출출할 때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것이 이 작은 봉지 안에 들어간 라면이다. 학생들이 친구들의 집에서 모여 앉아 끓여 먹는 것이 바로 이 라면이요, 종로 거리나 대학로를 여기저기 다니다가 들른 분식집의 으뜸 메뉴가 라면이다.
어느 때는 이 라면의 국물 맛이 생각나 밥 보다 먼저 찾기도 하거니와 또 사람에 따라 밥 보다 라면을 좋아하는 분들도 있다.
한국 라면의 원조는 삼양라면이다.
원래 일본음식이던 라면을 가난한 시절 서민들의 대용식량으로 싸고 맛있게 만든 이 회사의 원조 라면인 삼양라면은 현재도 그 섹시한 진한 주황색을 빛내면서 식품상회의 진열 칸을 채우고 있다.
삼양사에서는 이 원조 삼양라면 외에도 우유라면, 장수면의 고급 라면을 선보이기 시작했다. 1970년대 후반이었다.
후발 경쟁사인 농심에서는 매운 맛으로 승부하여 안성탕면과 너구리 우동면으로 늦게나마 맞불을 놓았는데 이후 불세출의 매운 라면인 신라면을 출시하여 이후 20여 년 간 라면 판매의 지존으로 군림하게 됐다. 아아, 80년대 후반에 나온 혁명과 같았던 그 매운 맛.
세월이 흐르면서 생면을 주로하는 우동류의 냉면과 짜파게티, 짜짜로니로 부딪친 인스턴트 짜장면류, 면을 튀기지 않고 건조시킨 칼국수 류의 분야와 컵라면의 시장에서 이 두 회사는 지존의 자리를 놓고 부딪쳤다.
그러나 옛날 공업용 우지 파동이라는 잘못된 신문과 방송 보도 기사로 인해 삼양라면은 돌이킬 수 없는 타격을 입었다. 이 소동은 사실무근인 것으로 밝혀졌지만, 삼야양라면은 지금도 농심에 밀려 아득한 2인자의 위치에서 권토중래를 꾀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 외에 오뚜기와 한국야쿠르트에서도 각자의 장기를 살려 라면 시장에 진출하고 있다.
개인적인 기호라는 극히 주관적인 이유로 나는 삼양라면의 손을 들어주고 싶다
일단 삼양사의 생산철학이 있다.
가난한 인민대중이 주리지 않도록 염원하는 기업정신이랄까, 이런 것이 더 어필하는 것이다. 또 기업윤리도 살아 있어서 그 서슬 퍼런 <?xml:namespace prefix = st1 ns = "urn:schemas-microsoft-com:office:smarttags" />박정희 군부독재 시대에 이 삼양식품은 유한양행과 함께 세무조사를 받지 않았던 곳이라고 한다.
또한 우지파동이란 것이 허무맹랑한 마녀사냥식 보도였던 것이 판명됐고 MSG를 넣지 않는 제조 공정이 맘에 든다. 지금도 국내산 원료를 주로 쓴다고 하는데, 가격의 마지노선을 지키면서 맛도 유지하고 식품으로서 국민 건강을 생각해주는 기업인의 심지가 가상하긴 하다.
얼큰한 맛이야 농심의 안성탕면, 신라면을 필두로 한 제품들이 더 매운 맛을 원하는 소비대중들의 기호에 맞춰주고 있지만 정도를 넘은 매운 맛이 어디 맛인가? 통증이지. 더 감칠 맛 나고 뒷 맛이 개운한 것은 삼양라면이 윗길인 듯싶다. 짜짜로니와 짜파게티를 비교해 봐도 그렇고 삼양의 ‘맛있는 라면’, ‘안 튀긴 라면’, ‘간짬뽕’, ‘된장라면’, ‘장수면’, ‘바지락칼국수’ 등의 라면을 보면 모두 매운 맛이 아니라 깊은 맛을 위주로 승부를 내고 기름기가 덜하고 화학조미료가 덜 들어간 느낌이다. 물론 농심 신라면, 무파마의 강렬한 매운 맛과 안성탕면의 얼큰함도 좋다(안성탕면은 생라면으로 먹으면 더 맛있다.). 하지만 매일 매운 맛만 먹고 살 수는 없지 않은가? 또 짠 맛을 좀 덜어냈으면 하는 것이 내 작은 소망이다. 물론 내 개인적인, 지극히 개인적인 견해이다.
이제 라면은 사업적 측면, 국민 보건적 측면에서도 커다란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먹거리이고 다시 말해 한국 국민의 맛에 대한 통념을 두 라면 제조사 간의 차이에서도 볼 수 있다 하겠다
이런 두 회사 간의 시장 주도권 다툼은 별도로, 라면이란 것이 다른 재료와 어떻게 섞이는가에 따라 그 맛을 달리하는 까닭에 라면에 여러 변주를 집어넣은 작품들이 속출하고 있다.
전골류에 라면을 넣는 라면 사리는 당연하고 떡볶이와 함께 조리하는 라볶이, 떡을 넣어 끓인 떡라면, 라파계티(라면에 파 넣고 계란 넣어 티 나게 끓인 것), 오뎅라면, 김치라면, 밥 한 공기를 같이 말아주는 라면밥(대학생 시절 한양대 앞 시장 골목에서 많이도 먹었다.), 카레 라면, 짜장 라면 등등 업그레이드가 속출한다.
나는 개인적으로 치즈를 한 장 얹는 치즈라면이나 해장용으로 물을 끓일 때 미리 콩나물을 흠씬 넣고 끓인 다음 콩나물만 건져내고 그 물에 라면을 넣고 (이 때 라면은 미리 다른 물에 삶아 건져 기름기를 빼낸다.) 스프를 2/3만 넣고 끓인 뒤 다시 콩나물을 얹어 낸 콩나물 라면, 미리 익힌 라면을 올리브 기름에 볶은 시금치, 마늘, 양파, 으깬 토마토, 바질과 같이 살짝 볶고 스프를 1/3만 뿌려 비벼 먹는 스파게티식 라면을 자주 먹는다.
그러나 라면 업그레이드 최고봉은 역시 동두천 보산동 골목의 라면집들의 라면이다.
지금은 쇠락의 징후가 확연한 이 보산동 미군 대상 클럽들이 몰려 있는 곳에서 틈틈이 보이는 것들이 바로 튀김이나 라면 등을 파는 집들이다. 옛날 이 골목은 장사도 잘 되고 미군들이 그야말로 구름 떼처럼 몰려들어 번영을 구가하던 기지촌의 핵심 유흥가였다.
부끄러운 과거지만 실체는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지금은 동두천의 미 2사단의 본부가 의정부로 이사갔고 병력이 감축, 이동됐고 많은 영외 거주자들이 영내에서 거주하게 됐다. 그래서 여기 보산동의 성세는 옛말이 됐고 문 닫는 상가가 속출하게 됐다.
미군들에게 튀김을 팔던 집들이 간단한 라면 류 등을 팔게 되면서 여기 치즈를 놓거나 하는 퓨젼 라면들이 생기게 됐다. 그리고 여기에 다른 토핑(?)을 얹으면서 라면의 업그레이드가 나타났는데, 내가 가장 맛있게 먹고 잘 가던 집이 뿌리식당이었다.
이 식당의 위치는 캠프 캐시 정문에서 신천 쪽으로 전철 고가를 지나 왼쪽으로 악기상을 지나 56하우스 식당 가기 전에 왼쪽으로 들어가 약 3~40여 미터 가야 한다. 아니면 지금 이 골목에 새로 생긴 광장에서 북쪽으로 난 작은 골목 사이로 보이는 곳이다.
이 집의 주 메뉴는 튀김이다. 주로 오징어, 양파, 감자, 고구마, 야채, 고추 튀김과 닭튀김이다. 그전에는 쇼트닝으로 튀겨 바삭한 맛이 더했었다. 그러나 지금은 포화지방산이나 다른 위험성 때문에 쇼트닝을 화끈하게 쓰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이 집은 친절하신 내외분이 같이 하시는데, 새벽까지 클럽에 오가는 미군들이나 유흥업소 종사자, 그리고 나 같은 갑작스런 손님들을 받느라 잠도 잘 못 주무신다.
이 집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메뉴는 치킨치즈라면이다. 라면을 끓인 위에 치즈를 얹고 닭살을 잘 발라 큼직하게 얹은 것이다.
여기 쓰이는 닭살은 반드시 튀긴 닭의 살로 발라 놔야만 맛있다고 한다. 튀긴 닭이라야 아마 물기가 덜하고 씹는 맛도 생기는 것 같다. 가격은 다소 비싸지만 생각해봐야 할 것이, 집에서 이 치킨치즈라면 하려거든 튀긴 닭이라는 필수불가결한 재료가 궁해지므로, 또 그 맛에 이미 홀딱 빠진 탓에 가격은 상관 없이 자주 가서 먹었다. 그 외에 불고기 라면도 있었다. 이것은 불고기를 라면에 얹은 것인데 미군들은 오히려 이 메뉴를 좋아한다고 한다. 나는 불고기 라면이 좀 짠 듯해서 갈 때 마다 어김 없이 치킨치즈라면을 먹었다.
라면이 주는 얼큰한 국물과 치즈가 주는 들척지근하면서도 감치게 다가오는 풍미, 그리고 쫄깃한 면발과 탱탱한 치킨 살이 어우러지는 질감은 라면요리의 최고봉이다.
소위 동두천의 신시가지라는 곳에서 밥을 먹거나 약속을 하고 사람들을 만나다 보면 내가 이 신시가지의 매트릭스에 여지 없는 일부가 된 것 같아 기분 나쁘다.
모든 것이 편의 위주다.
밥, 술, 찜질방, 노래방, 여관까지 먹고 자고 마시고 즐기는 모든 일체의 편의가 구비돼 있지만 왠지 누군가가 의도한 상업적 설계에 내가 그대로 따르고 있는 것 같다. 또 여기의 식당들은 얼른 봐서 모두 특색 있는 듯하지만 눈 여겨 보면 대개 상업적 공식과 상업적 프랜차이즈의 범람이다. 여기서 전통과 소비자 개인의 기호, 음식에 대한 경의는 찾기 힘들다. 아무리 맛 있는 집이라 하더라도 신시가지에서는 소비자의 편의와 판매자의 수지타산이 맞는 지점에내가 있는 것 같아 기분은 좋지 않다. 비록 음식장사라는 것이 영리가 목적인 것을 인정한다 하더라도 좀 그렇다.
혹 그렇지 아니한 집이 있어 이런 나의 평가가 미안하기는 하지만 대개 그렇다.
아마 신시가지의 공간 구조와 상업적 일률성에 대한 마뜩찮음과 구시가지에 대한 미련이 신시가지에 대한 나의 평가를 혹독하게 만드는 것 같다.그래도 예전 구시가지의 괜찮은 집들이 이곳으로 와있는 것도 개중 있는데, 그래도 예전의 장소에서 예전의 성가를 누리도록 하는 것이 좋지 않은가 싶다.
신시가지는 신시가지대로 번성하고 구시가지는 구시가지대로 면모를 유지하게끔 도시계획이나 개발방향을 맞췄어야 했는데 새로 생긴 한 곳 때문에 다른 곳이 죽는다는 것은 뭔가 칙칙한 구석이 있는 것이다. 개발은 언제나 지속 가능해야 하고 편중되지 말아야 하며 창조적이어야 하고 인간의 얼굴을 해야 한다.
동두천 신시가지의 개발은 이런 내가 원하는 조건들에서 모두 슬그머니 벗어나 있다. 아쉬워라.
아무튼 이 신시가지의 매트릭스 속에서 지인들과 만나 술을 좀 들이키다 보면 삼경 때나 새벽 미명에 은근 뿌리식당의 그 맛있는 퓨전라면이 생각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음식을 먹는다는 것은 그 식당이나 장소의 정취와 음식 만드는 이의 정도 함께 섭취하는 것인데 뿌리식당의 그 맛과 우리 동두천이 가진 부끄럽지만 기억해야 할 장소에서 주인 내외의 친절과 함께 튀김 냄새 배인 테이블에서 땀을 흘려가면서 먹는 맛을 따라올 라면 집은 가히 없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구시가지의 모든 맛집들이 신시가지로 온다는 끔찍한 가정을 한다고 해도 이 뿌리라면 집은 계속 그 자리에 남아야 할 것 같다.
라면은 동양 음식이다. 치킨과 치즈는 서양음식이다. 그러나 이 재료들이 동두천에서 만나 맛의 일가를 이루었으니 의미 있다. 부대찌게 만큼의 재미다.
신시가지에서 이곳 보산리로 튀김이니, 케밥이니, 또 치킨치즈라면이나 불고기라면을 드시러 오는 동지들을 많이 보고 싶다. 신시가지와는 또 다른 거리 거닐음의 재미와 맛의 재미가 쏠쏠할 것이다.
말레이시아의 옛날 항구도시 말라카라는 곳에 가면 약간 퇴락했다는 느낌을 주는 길거리들이 있다. 여기 마차도 다니고 어떤 집들은 안마당을 개방해서 관광객들이 와서 물도 마시고 동리 사람들과 얘기도 하고 차도 같이 마시고 한다. 서양의 관광객들은 오히려 이 거리를 걷는 것을 좋아한다고 한다. 오히려 편안함을 주는 낡음의 미학, 좋지 아니한가? 말라카 제국과 오래된 화교들의 문화, 포르투갈, 네덜란드 등 구미 열강의 자취가 고스란히 남아있는 독특한 도시가 이제는 옛날의 성세를 뒤로 하고 차분하게 자신의 부러진 뼈와 상한 살을 솔직하게 드러내 준다.
차후 미군의 철수와 거기 따르게 되는 구시가지의 개발이나 보존 여부도 이런 방향으로 생각해봄직도 하다.
P.S., 나는 한글 맞춤법 통일안의 일부에 대해 지극히 불신을 갖고 있다. 그래서 어느 단어들은 현행 맞춤법과 달리 가려고 한다.
1. 우레 - 우뢰로 씀(이건 한문에서 온 것이라)
2. 으레 - 의례로 씀(마찬가지 한문을 그대로 발음하는 것이 좋을 듯)
3. 찌개 - 찌게로 씀 (발음 상 찌게가 맞고 발음하기도 편하다. 하지만 요즘엔 대세를 좇아 찌개로 써봄직도 하다.)
4. 자장면 - 짜장면 (이게 더 정감있고 대중들이 쓰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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