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담만유 15. 후루룩, 국수예찬 4. 떠들썩한 큰 시장 잔치국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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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분이 우울하면 찾는 곳이 있다.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어떤 이는 산에 가기도 하고 어떤 이는 술집에, 어떤 이는 고향 선산에, 어떤 이는 심지어 화장터에 가기도 한단다.
나도 여러 곳이 있다.
소요산이나 한탄강 상류 쪽, 마차산 등 자연을 찾기도 하고 어느 때는 정동 교회나 경복궁을 가기도 한다. 또 예술의 전당 같은 곳에 가기도 한다.
그러나 가장 싸게 기분 전환 할 수 있는 곳은 시장이다. 동두천의 시장은 중앙시장과 큰시장을 들 수 있겠다. 그 외 옷가게들이 있는 제일상가가 있다. 또 양키시장이라 하는 애신 시장이 있다. 이 시장은 가까운 곳에 집창촌이 있어서 이 길을 걷거나 하다가 아는 사람이라도 만나면 괜히 오해를 받을까 겁도 나지만 예전 부터 미군 부대에서 흘러나오는 식품, 의류에서 시작하여 주류, 레저용품 등 갖가지 물건들이 죄다 모여 있기에 가끔 가서 필요한 것도 사고 한다. 큰시장과 붙어 있는 공설시장도 있다.
큰 시장은 이른바 5일 장이 서는 곳이다. 5, 10,15, 20, 25, 30일에 장이 선다. 장이 서는 날은 일찌감치 인근에서 각자의 물건을 들고 돈 사러 오는 분들로 가득차고 또 이들로부터 좋은 물건을 사러 오는 지역주민들로 일찍부터 번화하다.
정말 없는 것이 없다.
시골 두부, 장, 묵은 지, 메주, 콩, 좁쌀, 늘보리, 찐 쌀, 누룽지, 계절 별 나물들 이를테면 쑥, 달래, 취, 곰취, 참나물, 돗나물, 더덕, 도라지, 호박나물, 고구마 순, 고추잎, 시래기, 우거지.... 각종 농기구, 봄날이면 모종, 가을이면 푸짐한 대추, 밤,.... 토실한 강아지, 토종닭, 염소 부터 시작하여 몸에 좋은 뱀, 개고기, 생선... 갖가지 크기의 옹기, 시루, 그릇, 참기름, 들기름, 호두기름 등등이 잔뜩 있다.
뻥튀기 장수는 연신 쌀이며 누룽지를 튀겨 튀밥을 만들고 이름 없는 인기가수의 트로트 한 판이 오래된 스피커에서 튀어나온다.
물건을 파는 소리, 흥정하는 소리, 도마에 올려진 생선, 고기를 토막 치는 소리, 따르릉 자전거 소리, 자동차 경적 소리 (제발, 장날에는 차를 멀리 두고 오시는 것이 매너가 아닐까요?), 콩이야 팥이야 메주야 간장이야 시비와 훈수가 오가는 소리, 네 이 놈 그간 뭐하고 살았니? 어머, 너 시집은 갔니? 애는 잘 크세요? 너 안 죽고 잘 지냈구나, 어쩜 하나도 안 늙었니? 그간 객지 생활 좀 했다, 전일 상가에 못 가서 면목 없으이,... 반가운 소리, 인사 치레 하는 소리가 작약하고 호통 치는 소리, 제 아이 부르는 소리, 제 어미 부르는 소리, 애기 울음 소리, 어쩌다 싸우는 소리, 예수 믿으세요, 나무관세음보살, 도를 아십니까? 약 파는 소리, 아이고 데이고 돈을 잃어 버렸네 허걱 내지르는 소리....
장날 낮이 토요일이라면 느긋하게 나가 보는 것이 얼마나 즐거운 일인지 모른다.
금요일이면 의례 저녁 약속이 있고 그 약속은 곧 술자리로 이어지고 토요일 느즈막히 일어나 전날 늦게 들어왔다고 지청구 하시는 어머니께 약간의 아양을 떨고 나면 속이 허해진다. 사십객이 다 돼도 장가를 안 가는 철 모르는 웬수 같은 것도 아들이라고 늦은 아침을 주랴, 하고 어머니가 말씀하시면 나는 칠십을 훨씬 넘으신 어머니가 부엌에 들어가시는 것이 싫어 짐짓 물리친다.
그리고는 오케스트라 연습을 핑계 삼아 집을 나선다.
등에 둘러멜 수 있게 된 큼직한 니쿠사쿠(아이고 또 일본말...)에 악보니 읽을 책이니 지휘봉, 지갑, 휴대 전화를 챙겨 넣고는 그대로 고고 씽, 전에 집이 창말에 있었을 때나 말레이시아 오기 전 한 1, 2년 송내 주공 단지에 살았던 때나 마찬가지로 주로 차를 놓고 휘적휘적 걷는 맛이 좋다. 비가 오거나 연습 후에 어디 멀리 간다거나 하는 날이면 차를 가지고 다니지만 그렇지 않는 날에는 주로 차를 놓고 다녔다.
차를 타고 다니면 편리함은 있을 지 몰라도 놓치는 것이 있을 수 있고 토요일이 주는 느림의 분위기와는 왠지 맞는 것 갖지가 않아서다.
가방을 메고 물이나 녹차 병을 손에 들고 한 병을 다 비워갈 때면 큰 시장에 닿는다. 창말에서 가자면 사뭇 멀어 한 시간 좋이 걸릴 때도 있었다. 마침 날이 장이 서는 날이면 동행을 모집한다. 술 좋아하고 노는 것 좋아하는 것만 선생 닮은 제자 두엇, 역시 멀리 직장 다니다가 기분 좋은 토요일을 맞아 쉬는 김X호 군, 그의 천적 김X관 군이 대충 모이는 멤버이다.
일단 병력이 큰 시장에 집결하면 누가 말 할 것도 없이 곧 장날마다 장터 입구에 큰 차일을 친 국수집으로 간다.
이 곳의 국수는 장날의 기분과 맞춤하여서인지 언제나 맛 좋다. 거기에 돼지고기, 족발, 지짐 같은 것들을 먹다 보면 당연히 술 생각이 나게 된다. 그래도 양심들은 있어서 소주를 딱 한 병만 시킨다. 일단.
그러나 한 병은 두병이 되고 국수 한 그릇은 어느새 안주 거리가 첨가되기 마련이다. 그러나 반주 정도에 지나지 않게 마신다. 그 이상이 되면 토요일의 감흥이 사라지기 쉽다.
여기서 먹는 국수는 값도 싸고 양도 좋다.
장날의 떠들썩한 기분에 절로 기분이 좋아지고 후배, 제자들과 아주 유치할 정도의 티격태격을 하면서 어린이가 된 느낌이 되는 것도 좋다. 이 녀석아, 네가 내 국수를 한 젓가락 더 집어갔다, 형은 왜 술은 안 먹고 지나가는 부녀자 뒷태만 열중해서 보시오, 너 많이 컸다, 형 주름살이 자글자글해졌소, 제자야 담배 좀 끊어라, 선생님이 결혼하면 끊지요, 평생 장가 안 가서 네 놈 폐병 걸리게 할 것이다, 권하고 마시고 말발로 치고 입심으로 되받고 하면 어느 새 오전이 오후로 넘어간다.
심신 호쾌하지 않겠는가?
그러면 일차 시장 순시를 나선다.
군것질도 하고 주전부리 할 것도 사고 공연히 사지도 않을 몸빼 바지 가격도 물어보고 강아지 안아보기도 하고...
일주일 심신, 그 중 심에 쌓인 스트레스가 고향의 장날에 풀리는 것이다. 장날 먹는 장터 국수는 그 어감부터 떠들썩하고 흥겨운 아우라가 있다. 아무런 부담 없이 후루룩 마시듯이 먹는 것이다. 식당에서 장터국수라고 파는 국수가 아무리 맛 있어도 이렇게 장터에서 실전으로 접하는 장터 국수 맛에는 조족지혈이다.
시장에 가면 아무 것도 사지 않아도 기분 좋다.
또 시장에 가서 맘껏 눈요기를 하다가 맘에 드는 것들을 만나면 더욱 좋다. 작은 항아리, 외국인 친구 줄 만한 장신구 등등 여기서 산 물건도 꽤 된다.
다만 요즘 재래시장은 현대식 마트에 밀려 예전의 성가를 누리지 못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어떤 모자란 인종들이 이 작은 도시에 그렇게 많은 마트를 허가해 줬을까?
재래시장의 전성기가 다시 재래再來하길 바란다.
중앙시장, 제일시장, 애신시장, 큰시장으로 이어지는 지리적 연결의 벨트가 좀더 접근성이 좋아지고 편리한 주차 시설이 생기고 하는 방향으로 도시 개발을 한다면 대기업이 블랙홀 같이 이 소도시 서민들의 생활비를 마트라는 괴물을 통해 빨아대는 모지락스러움을 좀 개선할 수 있지 않을까?
아니면 부모님들이 자식들과 함께 나들이 와서 잠시라도 여기 장터 국수 집에 엉덩이 걸치고 국수 맛을 같이 보고 여기 저기 다니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것도 좋은 교육이 아닐까 한다.
과외 한 시간 보다는 부모와 함께 하는 시장 나들이가 정서에 좋을 것도 같고 현실 경제를 체험할 수 있게도 할 것이고 장터 국수의 호쾌함을 배울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 것은 책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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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조월태님의 댓글
조월태 작성일
흐, 역시 점입가경!!! 이 가을 가기전 붙타는 소요산도 보고 먹거리 소박 풍성한 동두천에 들려<br />
아우님과 막걸리 소주하며 하룻 밤 자고 오고 싶다....
조월태님의 댓글
조월태 작성일이 참에 일요일 오후나 어느 날 좋으날 합창단 산 좋아하고 풍류 좋아하는 사람들 떼거지로 소요산 들렸다가 동두천에 몰려가서 밤드리 노니고 싶어라 !!
유명덕님의 댓글
유명덕 작성일역시 수구씨 노래뿐 아니라 문재도 가히...맨날 자전거 타고 노래도 무지...하는 나랑도 한번......아니 여러번 .... 잘 읽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