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담만유 13. 후루룩 국수예찬 3. 칼국수.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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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정수구
댓글 0건 조회 3,572회 작성일 09-11-10 1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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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릴 때 우리 집에서 해 먹는 음식들은 정말 맛있었다. 하긴 유년 시절 먹었던 음식 어느 하나 정감 안 가는 음식이 없고 흐린 안개 속 기억에 각인된 음식이야 다과의 차이는 있다손 치더라도 누구에게나 몇 가지 있게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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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형들 따라서 먹었던 기왓장에서 지글거리던 만두와 베이컨, 여름날 맷돌에 간 콩국으로 만든, 지금이야 내가 좋아하지만 그 땐 그리 싫었던 콩국수, 겨울에 해 먹는 것이 이상했던 냉면, 노오란 좁쌀 밥을 까슬하게 지어 돼지 등뼈와 같이 가마솥에 푹 고아낸 콩비지, 특히 국물이 많지 않고 감자가 푹 퍼지도록 고아낸 닭볶음탕….



  그 중 하나가 닭칼국수다.


먼저 밀가루 반죽을 한다. 우리 집에는 딸린 식구들도 많았고 드나드는 손님들도 많았고 해서 이 반죽을 하는 것도 일이었다. 그리고 닭을 실한 놈으로 푹 고는데, 이 때 소고기 양지머리가 들어가야 국물이 달고 맛있다. 닭이 푹 익으면 건져내서 식히고 닭다리나 날개는 먼저 어른들 술 안주로 내고 나머지 팍팍한 부분은 찢는다. 반죽을 두어 시간 냉장고에 두었다가 밀가루를 뿌려 넓게 밀어낸다. 널찍한 방석만큼 넓게, 그리고 적당히 얇게 밀어내면 이를 손날 너비만큼 겹쳐 접고 약 0.5~0.7 cm 두께로 칼로 썰어낸다.


그리하여 칼국수.

 이 칼국수를 뜨거운 물에 먼저 삶고 건져서는 닭육수에 넣어 삶아내는데, 중요한 것은 한꺼번에 넣지 않고 조금씩 넣어야 칼국수가 뭉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일변 따로 양념장을 만든다. 간장에 쪽파와 마늘을 썰거나 다져서, 고춧가루를 뿌려 양념장을 만든다. 이렇게 칼국수를 만들고 김장김치를 곁들여 먹는다. 나는 이 닭칼국수를 정말 좋아했다. 그리고 어머니 따라 어디 칼국수 하는 집에 들어가면 꼭 닭칼국수를 먹곤 했다. 다른 칼국수는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러다 초등학교 6학년 때인가 몸이 좋지 않아 병원에 들렀다가 어머니와 지금 동광극장 근처에 있던 칼국수 집에서 조개 칼국수를 먹게 됐는데, 그 맛이 지금도 생각나게 만드는 일품의 맛이었다. 나는 닭칼국수가 아닌 다른 칼국수도 맛있다고 생각했고 반드시 육것이 들어가야 먹거리 취급을 하던 데서 차츰 물러나게 됐다. 그만큼 그 집의 조개 칼국수는 맛있었다.



 어머니가 연세가 드시고 집이 풍파를 겪는 동안 우리 집에서 닭칼국수를 해 먹는 기회는 시나브로 줄어들었다.


아마 고등학교 때는 칼국수를 먹지 못했을 것이다.



  시간이 흘러 대학엘 들어갔다.


87년 당시 한양대학교 바로 앞에 있는 중국집의 짜장면 값이 6~700원 하던 때였다. 시장의 분식집에서 500원이면 라면이나 칼국수를 먹을 수 있었다. 합창단 연습이 끝나고 선배들과 시장 안에 있는 88분식이라는 곳에 가면 점잖게 생기신 노부부가 칼국수나 라면, 떡볶이, 제육볶음 등을 해주셨는데 값도 싸고 일단 양이 많아서 자주 갔던 곳이었다. 88분식의 노부부는 내가 제대하고 난 뒤 가게를 넘기고 다른 곳으로 가셨다고 했다. 얼마 전 한양대 앞을 갔더니 분식집들은 거의 없어지고 뒤 길목 쪽으로 고깃집만 수두룩하니 늘었다.



 칼국수는 밖에서 먹자면 값이 비교적 만만하지만 집에서 면을 뽑아 만들어 먹기가 생각 외로 수월치 않은 음식이다. 때문에 조리가 간편하도록 만들 생면을 사다가 따로 국물을 내서 먹던지, 아예 물만 넣고 끓이면 먹을 수 있도록 만든 것을 먹기 십상이지만 사실 밀가루를 반죽하고 직접 육수를 뽑아내 만든 칼국수의 맛과 질감에는 미치지 못한다. 그래서 제대로 칼국수를 만드는 집엘 찾아 들게 마련이다.



 다른 동네에서 먹자면 서해안 해안가에서 먹는 바지락 칼국수가 최고다.



 안면도나 대부도, 용유도의 바닷가에서 조개구이와 함께 먹는 칼국수에는 서해의 갯내음이 잔뜩 들어 있다. 현지에 가면 쌓이도록 많은 칼국수 집 중 제대로 된 집을 고르자면 억지로 호객행위를 하지 않고 주차 관리만 하는 집에 가는 것이 제대로 된 선별법이다. 하도 많이 다녀봐서 어느 집이 조미료를 넣지 않고 신선한 재료로 칼국수 육수를 내고 칼국수 반죽을 제대로 밀어내는지 알 수 있고 내 머리 속 지도에 그런 집들이 빼곡히 들어찼다. 시간과 돈을 투자해야 그려지는 지도이니 이런 것을 진정한 경험에 의한 학습이라고 해야겠다. 특히 대부도에는 내가 있던 합창단의 지도교수님이 귀향하여 소담한 집을 짓고 사모님과 한온하게 지내시는 곳이다. 교수님을 뵈러 갈 때마다 맛있는 집이라고 데리고 가 주셔서 수월하게 알아낸 곳이 있으니 스승의 은혜는 정말 가이 없다.



  경기도 광주에서 남한산성으로 오르는 고갯길에 있는 너와집 샤브 칼국수라는 곳이 있는데, 이 집은 백합조개 샤브샤브가 맛있다. 그리고 이 백합조개를 우려낸 국물에 먹는 칼국수는 광주에서 회사를 다니다가 옮긴 이후로 가장 애절하게 생각나는 것이다.



  명동의 명동 칼국수는 내가 정말 좋아하는 곳이지만 사람들이 너무 많은 것이 흠이다. 여기의 만두도 일품이다. 이렇게 알려진 집들이 나중에는 맛을 보전하지 못하게 되는 경우가 많은데, 명동칼국수는 아직도 옛 맛을 간직하고 있는 것 같다.



  동두천에서 전편 콩국수를 소개하면서 언급한 충남칼국수는 그 면과 국물 맛이 사람의 입맛을 쓰다듬어 주는 내공이 있다. 다만 맛과 면의 질감이 그전 길 건너편 작은 공간에 있을 때보다 못한 것 같지만 이건 개인적인 기호의 편차에 불과하다고 믿고 싶다.



  생연 칼국수는 삼계탕도 맛있지만 칼국수도 별스럽게 맛있는 집이다. 이 집은 속살이 붉고 부드러운 삼계탕이 일품이라 여름날이면 서너 번 씩 찾아가 먹던 곳이다. 역시 칼국수의 국물도 달고 시원하다.



  생연 칼국수에서 나와서 오른쪽으로 가다가 보면 오른편에 눈보라라는 선술집이 있다. 저녁부터 문을 여는 집인데, 여기는 이제 막 술의 세계로 진입하려는 친구들도 많이 찾는 집이다. 실내 포장마차가 하는 어지간한 안주는 다 뽑아준다. 새벽 미명 무렵까지 영업을 하기 때문에 여기 저기서 술을 마시고 그래도 모자란 구석이 있거나 속이 허하다고 생각되면 찾아가는 집이다. 그런데 이 집의 칼국수가 또 맛있다. 글쎄 밤 늦게 고픈 속에 먹는 것이라 그런지 몰라도 이 집에서 칼국수 하나, 다른 안주 하나, 소주 두어병에 알맞은 친구 한 놈과 권커니 잣커니 하다 보면 이미 선경으로 진입하고 다른 자리의 친구들과 합석하게 되고 뭐 촌수나 학벌이나 학번이나 지연을 따지자면 동두천의 특성인 한 다리 건너면 다 베스트 프렌드인 면모가 나오고 아하, 네가 어디 사는 누구누구와 어떻게 되는 사이로구나, 일단 호구조사가 끝나고 계속 흥을 겨루게 되기 일쑤다.


 


칼국수는 분식집의 목록에서도 흔하고 샤브샤브나 탕류를 취급하는 집에서 맨 나중에 국물에 면을 넣어줘 즐기게 되는 음식인 바, 홀대 받기 십상이지만 만만한 음식이 아니다. 먼저 면을 만들어 내기가 힘들고 국물을 뽑기가 간단치 않다. 그러나 일단 해먹기로 마음을 먹으면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고 직접 해서 먹어볼 것을 권한다.



  일단 가장 쉬운 것이 호박과 멸치, 무로 국물을 낸 것이다. 그리고 좀 더 실력을 쌓는다면 다양한 조개류를 이용하는 것이 좋겠다. , 바지락, 모시조개, 대합조개, 홍합, 미더덕,…  여기서 더 나아가 닭발과 닭고기를 넣어 육수를 우려내는 닭 칼국수, 쇠고기 다진 고기나 아예 돈이 남는다면 양지머리를 통 크게 국물 우려내서 먹는 것도 좋을 것이다. 김치국물을 재주껏 모양껏 칼칼하니 끓여내는 것도 좋겠다. 아님 칼국수 면만 뽑아 먼저 삶아 찬물에 식힌 다음, 콩국을 부어 먹는 이색적인 방법도 권해드린다.


그리고 가장 최고 경지인 팥칼국수에도 도전해 봄직할 것이다.


 


일단 칼국수를 직접 해 먹는 재미에 들어가게 된다면 요리사의 세계에 진입했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결과에 연연하지 말고 천천히 다양하게 즐기길. 그리고 결과가 참혹하다면 근처의 칼국수 명가를 찾아 절차탁마하여 대기만성하여야 하지 않을까? 음식이란 해 먹는 데서 비로소 문이 열리는 길이다.


 


칼국수는 정말로 인간적인 음식이다.


나는 칼국수라는 단어를 떠올릴 때 먼저 그 맛보다는 그 온기를 떠올린다. 뜨거운 음식이 많고 많지만 내 마음 속 온도계는 칼국수에 담갔을 때 가장 수은주가 높이 올라간다. 비교적 싸게 먹을 수 있는 음식이기도 하다. 그러나 왠지 정감이 있다. 그 모호한 정감의 원인을 나는 아직 모르고 있다.


왜일까?


칼국수를 먹을 때 마다 대학생 때를 떠올려서인지, 아니면 어릴 때 집에서 먹던 그 맛있던 닭칼국수에 대한 기억 때문인지, 허허 반갑게 웃으시며 불초한 제자가 뵈러 갈 때마다 데리고 가셔서 바지락 칼국수를 사주시던 교수님이 생각나서인지, 아버지와 같이 훌훌 불어 후루룩 마시듯이 먹던 충남칼국수의 칼국수가 생각나서인지, 백열등 등불 아래에서 처음 본 처자들과 합석하여 마시던 소주와 나누어 먹던 눈보라 집의 칼국수가 생각나서인지(여인들이 생각나서인가?), 혹 동두천으로 돌아오는 통학 열차에서 만난 동갑내기 여학생이 오는 길에 소매치기를 당했서 천안서부터 쫄쫄이 굶고 왔다기에 역에 내려 같이 먹던 칼국수가 생각나서인지, 아니면 아니면, 아니면 무엇 때문인지, 아니면 이런 모든 기억이 내 맘에 형상화된 칼국수라는 음식에 모두 쓸려 들어가 용해됐는지 모를 일이다.


칼국수라는 음식은 태생부터 정감을 달고 태어났는지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음식이다.


 






사족처럼 하나 달자면, 우리 아버지는 칼국수를 칼제비라 이르신다. 내 생각이지만제비란 말은 손으로 잡다라는 잽이라는 말에서 나온 것이 아닐지. 그래서 수제비는 손으로 뜯어낸 것이고 칼제비는 칼로 잡아낸다는 뜻이 아닐까 한다. 실제 평양에서는 칼국수를 칼제비, 수제비를 뚜덕국이라고 한다고 한다. 손으로 뚜덕 뚜덕 뜯어냈다는 뜻일게다. 하지만 요즘 어느 식당에 가거나 요리 레시피에 보면 칼제비를 칼국수와 수제비의 중간으로, 국수와 수제비를 둘 다 반반씩 넣어 조리한 것이라는 뜻으로 쓰이고 있는 것을 본다. 용어의 정리도 시급하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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