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악가 직업인 2명 (정강찬 판사, 박영순 안과의사)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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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오현방
댓글 5건 조회 3,662회 작성일 12-01-05 1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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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또다른 나] 낮에는 法服, 밤에는 연주복 테너 정강찬 판사(46)


취재·정리=홍원상 기자title_author_arrow_up.gif





입력 : 2012.01.04 23:30


‘노래하는 부장판사’ 만나면 싸우다가도 화해하지 않을까요
피아니스트 서혜경 권유로 성악 입문 9년째 예술의전당서 독창회도
일급 음악인과 한무대 설 땐 나도 당당한 성악가
나 자신 위해 시작했지만 이웃 위해 노래하고 싶어





내 직업은 법관이다. 현재 수원지법 민사9부 부장판사로 근무하고 있다. 사람들은 나를 '노래하는 부장판사'라고 부른다. 각종 분쟁이나 갈등을 법률적으로 해결하고 조정하는 게 내 본업이지만 퇴근 후에는 테너로서 무대에 올라 클래식 음악 노래를 부르기 때문이다.

성악가로 입문한 지는 올해로 9년째이다. 20년 법조 경력의 절반에 못 미치지만, 연주복을 차려입고 서울 예술의전당이나 세종문화회관에서 가곡과 아리아를 부를 때는 나도 어엿한 성악가다.

나는 어릴 적부터 노래를 무척 좋아했다. 누구나 그렇듯이 주로 가요·팝송 같은 대중음악을 즐겨 불렀다. 그런데 1981년 3월 고등학교(서울 숭실고) 입학식 날, 합창부 선배들이 불러준 클래식 음악 축가(祝歌)에 '아, 이런 게 바로 천상(天上)의 소리구나!' 하는 충격을 받았다. 이후 친구에게 선물받은 테너 루치아노 파바로티의 음반을 들으면서 "나도 언젠가 많은 사람에게 아름다운 노래를 들려주고 싶다"는 꿈을 키웠다.

대학을 졸업하고 1991년 사법시험에 합격해 1997년부터 판사의 길을 걷고 있는 내가 성악에 입문하게 된 것은 피아니스트 서혜경 교수의 권유가 결정적이었다. 2002년 울산지법에 근무할 때 가입했던 클래식 동호회 초청으로 서 교수가 공연해주신 것을 계기로 인연을 맺었다. 그리고 2004년 가을, 내가 근무하던 서울중앙지법과 가까운 서울 서초동 삼익악기 전시장에서 그분을 다시 만났다. 전시장을 가득 채운 수십 대의 피아노를 보면서 서 교수는 "제가 반주해 드릴 테니 노래 한 곡 불러 보시겠어요"라고 말했다.

뜻밖의 제안이었지만 나는 곧 목을 가다듬었다. '최고의 피아니스트 앞에서 노래 부를 기회는 다시 오지 않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가곡 '그리운 금강산'과 이탈리아 민요 '오 솔레미오'를 힘차게 불렀다. 고등학교 교내 행사 때 합창부가 자주 부르는 것을 들어서 가사를 거의 다 외우고 있을 정도로 친숙한 곡이었다. 반응은 기대 이상이었다. 서 교수는 "조금만 배우면 무대에 설 수 있겠다"며 성악을 정식으로 배울 것을 권하면서, 제자를 소개시켜 줬다.

얼마 뒤 열린 삼익피아노 창사 기념 음악회에서 처음 무대에 올랐다. 공연 전날 너무 무리해서 연습하는 바람에 소리가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등줄기에는 식은땀이 줄줄 흘렀다. 하지만 노래를 부르는 순간 모든 것이 잊히고 마음도 평온해졌다. 관객에게 아름다운 선율을 선사한다는 생각과 함께 몸 안으로 밀려오는 희열은 정말 짜릿한 경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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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con_img_caption.jpg 정강찬(왼쪽) 판사가 2010년 5월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위대한 성악가들’이란 음악회에서 소프라노 이정애와 함께 가곡을 열창하고 있다./사진작가 김성현씨 제공


데뷔무대의 '첫 경험'은 나를 성악에 대한 배움과 열정으로 깊이 빠져들게 했다. 이후 수소문해서 실력파 성악가들을 스승으로 모시고 차근차근 노래를 배우기 시작했다. 어느 정도 실력이 쌓이자 아내의 외삼촌이자 서울 세종문화회관 사장을 지낸 테너 김신환(金辛煥·80) 선생님(영남대 음대 명예교수)을 찾아 사사(師事)하고 있다. 김 선생님은 4년 넘게 주말마다 서울 강남에 있는 한 스튜디오에서 내게 성악을 가르쳐주신다.

2008년 2월, 나는 겁 없이 서울 예술의전당 리사이틀홀에서 독창회를 가졌다. 다음해 2월에는 2500석 규모의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국내 성악가·연주자들로 구성된 '클럽예가'와 함께 무대에 올라 가곡 '강 건너 봄이 오듯'과 이탈리아 작곡가 레온카발로(Leoncavallo)가 만든 '아침의 노래'를 불렀다. 2010년과 2011년 5월에는 세종문화회관과 대구 오페라하우스에서 열린 '위대한 성악가들'이란 음악회에서 국내 정상급 음악가들과 함께 공연했다. 실력이 많이 부족한 내가 큰 무대에 잇달아 오를 수 있었던 것은 도와주시고 성원해주신 많은 분들 덕분이다.

다른 직장인들도 그렇겠지만, 내 하루 일과도 정신없이 돌아간다. 일주일에 사흘 가까이 재판을 진행하거나 조정 절차를 벌이고 나머지 날들에는 판결문을 쓰고 사건기록을 검토한다. 그래도 노래 부르기는 멈출 수 없다. 노래는 내 행복의 원천이자 삶을 즐기는 휴식처이기 때문이다. 사법연수원에 다니던 1993년, 형님께서 갑자기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다. 나는 하루아침에 형을 잃어버린 아픔으로 정신적 불안감과 공허감에 빠졌다. 힘든 상황을 벗어나려고 술에 빠지기도 했다. 화도 잘 냈다. 길을 가다가 차가 막히면 짜증부터 냈다. 하지만 노래를 시작한 뒤로 내 삶은 크게 바뀌었다.

법관으로 근무하는 데도 노래는 큰 도움이 됐다. 큰 재판을 앞두고 스트레스가 쌓일 때 나는 음악으로 마음을 다스린다. 사건기록과 씨름하다가 늦은 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음악을 듣거나 고음(高音) 훈련을 하는 것이 가장 행복한 시간이다.

처음엔 나 자신을 위해 무대에 올랐지만 이제는 이웃을 위해 노래를 부르고 싶다. 이 세상 모든 사람이 함께 노래하며 행복하게 웃을 수 있기를 바라며…. 브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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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싱하는 58세 안과의사 “지금이 인생의 절정”

[중앙일보] 입력 2012.01.05 00:00

박영순 아이러브안과 원장



“원투, 원투…”

3일 오전 10시 서울 양재동의 한 복싱체육관에서 섀도 복싱(shadow boxing·머릿 속으로 상대와 싸우는 것을 상상하며 펀치를 날리는 것)에 열중하는 중년 남성의 이마엔 연신 땀이 흐른다. 이미 2000번 이상 줄넘기를 하고 윗몸일으키기를 50회 이상 실시한 뒤라 추운 바깥 날씨에도 얼굴엔 열꽃이 핀 듯했다.

 젊은 사람들이 대부분인 체육관에서 유독 눈에 띄는 복서는 안과의사 박영순 박사(58·아이러브안과 원장)다. 그는 매일 아침 기상과 동시에 체육관으로 향한다. 글러브를 낀 지 벌써 8개월째다.

 터프한 운동인 복싱에 입문하게 된 계기를 묻자 그는 “(자신에게) 적합한 다이어트법을 찾고 있었다. 안과 수술이 정교하다 보니 고도의 정신력과 체력이 필요했다”고 대답했다.

 효과는 탁월했다. 체중이 8㎏이나 줄었고 주변에서 “피부가 좋아졌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 하지만 복서가 되는 길은 험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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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내가 걱정을 많이 했어요. 의사인데 혹시 손 부상이라도 입으면 어떻게 하느냐고. 붕대 단단히 감고, 글러브를 꼭 끼는 등 대비를 했어요. 하다보니 복싱이 생각보다 안전한 운동이란 사실을 알게 됐어요.”

  그는 매주 평균 3~4번 체육관을 찾는다. 하루 운동량은 1시간 30분 가량. 하체 단련과 풋워크 향상을 위해 매번 2000회 이상 줄넘기를 하고 샌드백을 친다. 그동안 스파링(연습경기)도 5차례 해봤다.

 “장난이 아니더군요. 때리고 맞는 것을 주고받는 것이 복싱인데 맞는 사람에게 3분(1라운드)이란 시간은 너무 길게 느껴졌어요. 무조건 많이 때리면 이기는 것으로 생각해 덤볐는데 복싱은 때리는 것보다 맞지 않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았어요. 줄넘기·달리기를 해서 풋워크를 기르고 하체운동을 많이 해야 주먹을 잘 피할 수 있어요.”

 그에겐 ‘의사 복서’ 외에 ‘닥터 바리톤’이란 별명이 하나 더 있다.

 50대 초반이던 7년 전, 그는 성악에 도전했다. 바쁜 수술 일정에도 불구하고 주 3일 꼬박꼬박 교습을 받았다. 귀가한 뒤에도 감을 잃지 않으려고 밤새 음악을 들으면서 연습에 몰두했다.

 성악 입문 1년 뒤인 2006년 첫 독창회를 열었다. 지난해엔 백내장 환자 돕기 자선음악회를 열어 형편이 어려운 노인 100명에게 무료 백내장 수술을 직접 해주었다. 연말엔 소아암 환자 돕기 자선 음악회에도 나섰다. 실력을 인정받아 농구경기장에 초청돼 애국가를 부른 적도 있다.

 “오전 10시∼오후 7시엔 병원에서 쉴 새 없이 수술하고 환자들을 진료하죠. 하지만 병원 일이 끝나면 성악가 박영순이 됩니다. 성악은 제2의 인생을 살게 해 줘요. 지금이 제 인생의 클라이맥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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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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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신중님의 댓글

권신중 작성일

한 10년뒤에는 노래하는 변호사 윤은규.. 이런 쥬스 나오지않을까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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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정기님의 댓글

민정기 작성일

46세인대  81년도 숭실고입학  이라니  뭔가잘못된듯  하네요 ㅎㅎ저도 숭실출신인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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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월태님의 댓글

조월태 작성일

맞는 것 같은데? <br />
<br />
내가 1971년 3월에 고1 입학하였으니까 현재  대락 깍아서 56살 정도인데 <br />
틀리지 않은 것 같음<br />
<br />
 민정기 선생이 혹여 착각한 것 아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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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현방님의 댓글

오현방 작성일

숭실 출신이 합창단에 많네요.<br />
박정호(입학만), 이충권, 민정기.<br />
<br />
군산고 출신은 김영재, 조월태, 오현방.<br />
아~ 내 후배도 데려와야 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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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월태님의 댓글

조월태 작성일

우리 합창단에도 " 노래하는 안과의사 의학박사 장진호 "... <br />
<br />
" 노래하는 창공의 사나이  전투기 조종사 공군대위  양선모 "<br />
<br />
이런 식으로 우리 코리아남성 합창단 단원이야말로 <br />
<br />
제각기 직업 밑에 따라오는 장한 이름들이 줄줄줄 이어질 수 있지요<br />
<br />
한번 들 긴 꼬리 리플들  달아보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