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리아남성합창단제13회정기연주회연주곡 해설 1. (미사에서 막걸리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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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정수구
댓글 1건 조회 2,523회 작성일 12-06-05 1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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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제 졸문을 너그럽게 봐주시는 합창단 여러분
혹 고칠 부분이 있는지 오탈자는 없는지 봐주십시오.
언제나 이 해설을 내놓을 때면 부끄럽고 그렇습니다.
그래도 용서하십시오.
감사합니다. 




코리아남성합창단 제13회 정기연주회 곡목 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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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 해설/가사 해석: 바리톤 정수구





남성 합창을 위한 미사


작곡가 발렌틴 에트바르트 베커 Valenti Edward Becker 1814년에 태어나고 1890년에 사망한 독일 뷔츠부르크 출신의 작곡가이다. 당시 독일을 풍미하던 낭만주의 사조(思潮)는 음악에서도 이탈리아 중심을 벗어나 독일적인 것을 찾던 시기였다. 때문에 라틴어로 된 기존의 전례미사곡을 독일의 서민들도 알 수 있게끔 번역하여 작곡한 미사곡들이 다수 나오게 됐는데, 이 곡도 역시 그러한 당대의 풍조에서 나온 듯하다. 전례미사곡의 6개 곡(Kyrie, Gloria, Credo, Sanctus, Benedictus, Agnus Dei) 앞에 ~에 부치다, ~에게 라는 뜻을 가진 zum을 붙여 이 가사가 원래 전레미사곡 가사에서 파생돼 나왔음을 표시하였고 동시에 라틴어 가사에 대한 은근한 독립적 선언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 곡의 예술성은 가사만 번역한 데 있지 않다. 전례미사 중 유일하게 헬라어로 된 Kyrie는 원래 주님 이란 뜻이지만 여기서는 독일어 Vater, 즉 아버지란 단어를 쓰고 상대발을 부르는 독일어 높임말인 Sie 대신에 친근한 사이를 부르는 Du를 써서 더 다가가기 편한 하나님을 묘사한 번역에서의 배려와, 종교개혁 후 로마 카톨릭과 신학적 선을 긋는 개신교 특유의 신학적 고려가 보인다.


독일어가 음악적으로 불편한 언어라는 예전의 인식은 베커 이전 괴테와 쉴러 같은 시인들, 그리고 모짜르트와 슈베르트, 바그너, 슈만 같은 탁월한 음악가들에 의해 깨졌다. 그리고 베커는 이 선배들이 남겨 놓은 자산들을 더 습득하고 적용시켜 자칫 둔중해지기 쉬운 독일어 가사의 어감을 최대한 음악적으로 살렸다. 독일어의 두꺼운 모음과 장단을 제대로 살리고 단어가 갖고 있는 뜻에 알맞은 감정적 묘사를 고려하였고 전체적으로 흐르는 감정 선의 배치를 교묘하게 사용한 점, 그리고 처음의 주제가 나중에 다시 반복되게 하여 일관성과 또렷한 주제의식을 갖는다는 점이 이 곡의 두드러진 미덕으로 꼽힌다.


 


가사해석


 


1) Zum Kyrie: Kyrie(헬라어로 주님이란 뜻을 가진 전례미사의 첫 곡)에 부치다.


         저 높은 하늘에 계신 아버지여, 아버지여, 우리를 불쌍히 들으소서, 들어주소서. 아버지여 우리를 자비롭게 여겨주소서, 우리 죄를 생각하지 마실 것은 당신의 사랑과 온유와 자비의 하나님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기도를 들으시고 굽어살피소서. , 자비로 우리를 긍휼히 여기소서.  


 


2) Zum Gloria: Gloria(라틴어로 영광의 뜻을 가진 전례미사의 두번째 곡)에 부치다.


         존귀와 영광이 이제부터 영원히 당신의 것입니다. 당신을 찬양합니다. 무궁한 감사를 바칩니다. 당신께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는 자들에게 평화를 주시고 당신의 축복을 내려주소서. 존귀와 영관이 이제부터 영원히 당신의 것입니다.


  3) Zum Credo: Credo(라틴어로 나는 믿는다라는 뜻이며 기독교의 사도신경이 그 내용이다. 전례미사의 세 번째 곡)에 부치다.


          창조주이시며 세상의 주인이신 주님을 내가 믿습니다. 강한 손으로 만유를 주관하시는 당신과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신중의 신이고 빛 중의 빛이신 그를 믿습니다. 우리에게 복 주시려 자기 목숨을 버리고 세상의 복의 위하여 무덤으로 내려가신 그를 믿습니다. 천사들이 찬양하고 하늘의 해가 옹위하는 바로 그 분을 내가 믿습니다. 우주를 감싸 안은 그 사랑을, 그리고 그 근원되신 아버지의 영을 내가 믿습니다. 그의 영광에 축제의 나팔을 불지어다. 그의 존귀에 찬양을 올릴지니라.


4) Zum Sanctus: Sactus(라틴어로 거룩하시다라는 뜻을 가진 전례미사의 네 번째 곡)에 부치다.


         거룩, 거룩, 거룩하시도다. 만군의 주 하나님. 하늘과 땅이 당신의 능력을 찬양하나이다. 그들이 당신의 능력을 찬양하며 모든 것 위에 뛰어나심을 찬양하나이다. 영원무궁히 높은 곳에 계신 주께 호산나.


         


5) Zum  Benedictus: Benedictus(라틴어로 축복이란 뜻을 가진 전례미사의 다섯 번째 곡)에 부치다.


          주의 사자로 오시어 그의 말씀을 만방에 선포하시는 분이여 경배 받으소서.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축복 받으소서. 당신께 호산나. , 주여. 높은 곳에 계신 주께 호산나.


 


6) Zum Agnus Dei: Agnus Dei(라틴어로 신의 어린 양이란 뜻을 가진 전례미사의 마지막 곡)


           나의 구세주여, 나의 구세주여! 우리 죄를 구속하시는 이여, 우리를 당신 곁에서 은혜 받게 하소서. 긍휼히 여김을 받으소서, 나의 주이며 나의 신이신 이여. 나의 구세주여, 나의 구세주여! 우리 죄를 구속하시는 이여! 긍휼히 여김을 받으소서, 나의 주이며 나의 신이신 이여! 아버지여, 아버지여, 우리에게 당신의 평화를 주소서. 아버지여, 우리 기도를 들으소서. 우리의 마음에 평화가 있게 하소서. 우리에게 평화를 주소서, 주소서. , 아버지. 평화주소서. , 주여! 들어주소서, 들어주소서.


 



Toccata of Prase(
찬양의 토카타)


토카타란 17세기에 주로 쓰인 건반악기를 위한 곡의 일종이다. 템포의 변화, 폭넓은 화음, 다양한 악구의 교체 등이 자유로운 것이 특징이다. 찬양의 토카타 17세기가 아닌 현대에 쓰인 곡이며 건반악기를 위한 곡이 아니라 합창곡이지만 이런 토카타의 형식의 본질에 근원적으로 접근한다.


6/8박자와 3/4박자가 동시 진행하거나 6/8, 3/4, 4/4, 2/4박자가 연이어 머리와 꼬리를 물고 나온다. 또한 빠르기가 달라지기도 한다. 그러나 이렇게 변화하는 가운데도 신기하게 곡의 주제는 점점 강조된다. 그리하여 첫 가사 jubilate: 기뻐하라 처럼 기쁜 찬양이 시종 일관하고 마침내 환호성 같은 할렐루야로 끝난다. 이 곳은 반주가 합창의 단순한 반주로 그치지 않고 전체적인 분위기와 템포의 완급을 선도하면서 나름대로의 독립성을 확보하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Kum Ba Yah


제목 Kum Ba Yah: 쿰 바 야는 흑인들의 방언으로 여기 오소서(Come by here)라는 뜻이다.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의 고된 삶 속에 그들을 지탱해준 영혼의 노래 중 하나이다. 1930년대 발굴돼 1960년대 보이스카우트의 캠프에서 많이 불려지는 등 대중적으로 알려진 곡이 되었다. 이 노래는 다른 흑인 영가보다 더 아프리카 풍의 향수가 짙게 나오고 있으며 약간의 당김음과 조옮김을 통한 변형이 계속되기 때문에 주제 가사와 멜로디가 반복된다 하더라도 지루하지 않다. 또한 듣는 이의 감정을 흡수하고 고조시키는 묘한 매력을 갖고 있다.


 


여기 오소서, 여기 오소서. 내 주여, 오 내 주여, 여기 오소서.


누군가 기도하나이다. 여기 오소서 주여.


누군가 찬송 부르나이다, 오 주여. 여기 오소서 내 주여.


우리 모두 주님을 찬양합시다. 주여 여기 오소서.


! 주여! 여기 오소서, 여기 오소서.!


 




Just a Closer Walk with Thee


우리에게 여러 복음성가 가수들의 목소리로 알려진 이 곡은 원래 아프리카 계 미국인들의 노래이며 시기적으로는 19세기 중엽 생겨난 것으로 알려지고 있으나 작곡가나 작사가, 그리고 정확한 기원은 알려지지 않았다. 1940년대 여러 아프리카 계 미국인들의 노래가 악보로 정착되고 유명한 가수들의 레코딩이 붐을 이루던 시절에 여러 재즈 음악가들에 의해 많이 불려지고 알려졌다. 많이 불려지는 곡들은 그 이유가 있다. 이 곡이 갖고 있는 순수함, 그리고 신앙적 열정은 일부러 애를 써서 작곡한다고 해서 얻어지는 것이 아닐 것이다.


 


나는 비록 약하나 당신은 강합니다.


예수께서 나를 모든 잘못에서 지켜주시니


주와 함께 걸어 가는 동안 내가 만족하리다.


유혹과 함정 가득한 이 세상에서


내가 비틀거릴 때 누가 날 돌보아 줄 것이며


누가 나의 무거운 짐을 나누어 덜어줄 것인가? 주여, 당신 한 분 밖에 없나이다.


당신과 더 가까이 동행하니 내 모든 연약함도 문제될 것이 없나이다.


매일 주와 더 가까이 동행하게 하소서. 주여 동행하게 하소서.


인생 여정이 끝나고 나의 날들이 다하였을 때 당신의 나라로 나를 인도하소서.


당신의 나라로, 오 나의 주여, 당신의 나라로 이끄소서.


주와 함께 걸어가려네. 더 가까이 가려네. 날마다


오 나의 주여, 동행하소서.


 


 




법궤를 메고 가는 노래


이스라엘인들이 하나님의 법궤를 메고 가는 광경을 흥겨운 우리 전통의 리듬으로 재구성했다. 법궤는 이스라엘인들이 출애굽 당시 모세가 하나님으로부터 직접 받은 십계명이 적힌 돌판 등을 넣은 신성한 궤이다. 이는 하나님의 구원의 언약이 그들에게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들은 이 법궤를 메고 나가 전쟁에서 이겼고 요단강을 건넜다. 신명기에서 제사장들이 법궤를 메고 가는 장면이건, 사무엘 상에 나오는 팔레스타인 인들에게서 법궤를 다시 가져오는 장면이건, 사무엘 하에 나곤의 타작마당에서 법궤를 가져오는 장면이건 법궤를 메고 간다는 것은 승리를 위한 길이고 하나님의 언약을 확증하는 일이다.


이런 흥겨움이 우리 전통 장단과 만났다. 전통 민요에서 매기는 소리와 받는 소리처럼 독창과 합창이 번을 들며 멜로디를 주고 받기도 하고 굿거리와 자진모리 장단이 교차되면서 흥을 돋운다.


 


잊혀진 계절


바람이려오로 데뷔한 가수 이용이 일약 스타덤에 올린 이 곡은 시인인 박건호가 자신의 실연담을 토대로 가사를 쓰고 이를 작곡가 이범희 옮긴 곡이다. 원래 가사에 나오는 ‘10월의 마지막 밤‘9월의 마지막 밤이었으나 앨범 발매 시기가 늦어지면서 10월로 바꾸게 됐다고 한다. 덕분에 10월에 얽힌 추억들을 무수히 양산하고 언제 부턴가 10월이 되면 꼭 들어야 하는 노래가 되어버렸다


 친근한 가사와 호소력 있는 이용의 목소리로 다가왔던 이 곡은 초반의 반주와 도입부도 만만치 않은 멜로디 라인을 보이고 있어서 짧고 간결하지만 그 구성이 탄탄한 곡이다. 이 곡을 김준범이 합창으로 편곡했다. 발라드인 원곡을 블루스와 트롯버젼으로까지 변형시켜 재미를 더했지만 원곡이 갖고 있는 매력은 남성의 화음에 의해 중후하게 살아난다.


 


산촌


한국 가곡의 미학적 원형을 간직한 작곡가이자 선구자의 작곡가로도 유명한 작곡가 조두남(1912~1984) 1958년에 작곡한 곡으로. 씩씩한 전통 장단에 궂은 것 없고 구른 데 없는 말쑥한 한국의 고향산촌을 노래했다. 이런 좋은 우리 가곡을 안현순이 편곡하여 합창곡으로 재해석했다. 그리하여 전통장단을 한 번 더 튕기고 구슬려 한 층 흥을 올렸지만 원곡의 느낌은 그대로 살렸다. 한국인이 갖고 있는 고향에 대한 향수는 감상적이고 애조를 띤 느낌이 공동체적이라고 할 정도로 대부분인데 이 곡 산촌은 한국인의 감성을 벗어나지도 않고 감상에 젖지도 않으면서 한국인의 원형적 공간인 고향의 이미지를 잘 형상화시키고 있으며 토속적인 낱말을 차용했으나 세련미까지 흐르는 곡이다.


 


막걸리


코리아남성합창단의 단원인 시인 조월태(현 단장)와 작곡가 이순교(전문위원)는 이미 염소와 촌할아버지”, “짜장면”, “도둑고양이등의 작품을 코리아 남성합창단의 정기연주회에서 발표하여 합창 팬들과 평단의 호평을 받은 바 있다. 막걸리는 한국인의 사랑을 받는 술이고 서민의 애환이 들어있는 술이다. 시인은 이 막걸리를 시적으로 정의하고 작곡가는 이를 음표로 받았다. 시인은 전작에서와 같이 그의 한국인이라는 공동체적 존재가 근대화의 홍수 속에서 사회 경제적으로 재구성되면서 겪은 공간적 뒤틀림과 소외된 실존, 그리고 아스라히 잊어버리고 넘어가는 미시적인 사물을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며 아픔의 흔적과 추억의 자취를 하나하나 캐내 우리에게 챙겨준다. 그의 실존적 언어 속에서 막걸리는 가사 그대로 더 그레이트 코리안 막걸리로 재탄생한다. 그리고 이런 시대적 철학적 모색 속에서도 그의 시어는 어렵지 않아 또 하나의 미덕으로 간직된다. 흥겨움과 풍자, 풍류가 섞인 우리 한국인의 또 다른 뽀얀 모유인 막걸리를 합창, 그것도 남성합창으로 질탕하게 경험하는 것도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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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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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재섭님의 댓글

고재섭 작성일

언제나 그렇지만 수구아우의 음악적 깊이에 놀라곤한다 해박한 지식과 논리정연함에 탄복한다 이렇게 해석이 깃들여지니 더욱 깊이있는 연주가 될걸 확신하네 고마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