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년 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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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장우모
댓글 4건 조회 2,432회 작성일 12-05-25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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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너무 많이와서 강남고속터미날 지하상가가 잠겼던 해...


답답한 맘에 지리산에 갔는데 6월 중순 얇은 천조각 하나 가져가서 텐트안에서 잠못이루고 밤새 떨었던 해...


천왕봉>진주>부산에 도착해서 저녘에 친구하고 서면로타리 나갔다가 6월 10일날 최루탄 맞았던 해...


무척이나 혼란스러웠고, 6.29 선언이 있었던 해 였습니다.


86년 말에 야학을 만들기로 작정하고 천막으로 개교하는데는 꼬박 10달이나 걸렸습니다.


겨울 방학 동안의 준비과정을 통해 개강과 동시에 야학설립준비위원회 발족하고, 학교측에서 동아리


등록안하면 지원할 방법이 없다고 해서 동아리 등록하고 설립활동을 시작했습니다.


휴학을 하고 칠판을 걸수있는 곳이면 안가본 곳이 없습니다.


예식장,교회,성당,절,일반 학교,관공서 등등 저녘시간에 칠판을 걸 수 있는곳이면 찾아가서 장소좀


쓸수있게 도와 달라고 부탁을 하면서 다녔는데 도와주는 곳이 한군데도 없더군요.


종교단체에서는 장소와 운영비를 도와 줄수는 있는데 커리큘럼을 넘기라고 하더군요.


종교수업을 넣겠다는 요구지요...


민정당(한나라당 전신) 청년국장으로부터 도와주겠다는 연락이 왔길레 찾아갔었습니다.


시국이 시국인지라 네다섯번의 검문을 당하고 나서야 민정당 중앙당사로 들어갈 수가 있었습니다.


이미 경험한터라 시간을 허비하고 싶지 않아서 보자마자 조건 얘기하라고 요청했더니 아무런 조건이


없다고 하면서 운영비도 지원하고 필요하면 장소도 지원하겠다고...


그리고 솔깃(?)한 제의가 있었는데 제게 장학금을 주겠다고 하더군요.


아무 조건이 없다고 했는데 얘기하다보니 한달에 한번 대표가 민정당에 와서 운영상황만 보고하랍니다.


바로 박차고 나왔습니다.


휴학하고 몇달이나 발이 불어터져라 열심히 도움을 청하러 다녔는데 성과는 없고 모집해 놓은


교사중에 속없는 한 친구는 언제 시작할거냐고 다그치고...


어렵게 꾸려낸 조직은 와해될 것 같고...


그러던중에 한가닥 희망의 길이 친구로 부터 열렸습니다.


친구가 얘기를 했는지 친구가 자취하는 집주인이 학교 건너편에 땅이 조금있는데 빌려줄 용의가 있다고...


조건은 월 만원에 일년치 일시불 조건으로 아주 좋은 조건이었습니다.


다음은 교사가 문제였는데, 마침 학교 입구 탁구장에 손님이 많아 옥상에 천막을 쳤는데 불법으로


신고가 되어 철거를 해야해서 우리가 40여평이나 되는 천막을 12만원주고 사가지고 천막 벗기고


쇠톱으로 자르고, 옥상에서 내려서(무거워서 정말 고생했습니다) 고물상에서 천원에 빌린 리어카로


현장까지 날라서 공사를 시작했습니다.


모집된 교사중에 마침 기능공 출신이있어 용접기는 학교 기계과 실습실에서 지원받아서 용접하고...


바닥은 과동기중에 현장소장하는 형님이 계셔서 시멘트 20포,모래,자갈해서 한차 지원받아서 공사하고...


바닥 공사중에 갑자기 비가 많이와서 물퍼내느라 뺑이쳤습니다.


87년 여름은 무척이나 덮고 비가 많이 내렸던것 같습니다.


뙤약볓에서 힘들게 천막공사하는데 불법이라며 철거하겠다고 매일 동사무소에서 나와서 한달넘게

경고하지... 공사하랴... 매일 부탁하랴... 암튼 무지 힘들더군요...


참다참다 더이상 못참겠어서 부수라고 정면으로 대들었습니다.


부수러오면 가만 안있겠다고 지랄을 해댔죠.


그때는 정말이지 악밖에 남은것이 없어서 삽이든 뭐든 들고서 대항할 작정이었습니다.


그랬더니 며칠지나서 조금은 높아보이는 사람이 큰차를 타고 오더군요...


아마도 관활 동사무소에서 해결이 안될것 같으니 시청에서 직접나온것 같았습니다.


쳐다보기도 싫어서 왔는데 아는척도 안했더니 다가와서 한마디 하더군요...


민원만 들어오지 않게 해달라고...


그러면 눈감아주고 더이상 오지 않겠다고...


야학 짓느라 돈이 별로 없어서 포도 두근으로 민원을 해결했습니다.


다음은 난방이 문제였는데 동아리 지도교수로 계시던 최OO교수님께서 공사장에 한번 와보시고


천막안 더위를 경험하시고는 얼마나 필요하냐고 하시면서 통장과 도장을 주시더군요...


필요한 만큼 빼서 쓰라는 너무도 고마운 말씀과 함께...


정말이지 너무나도 눈물나도록 고마웠습니다.


무더위를 피하는데 필요한 합판과 스티로폴 구입에 필요한 50만원만 썼던거 같습니다.


그렇게 난방문제 해결하고, 책걸상은 모초등학교 교감선생님께서 학교 창고문을 열어주시면서


필요한거 가져가라고 하셔서 옛날의 원목책상과 몇개의 캐비넷을 지원받고...


칠판과 분필은 대학교측에서 창고를 열어주어서 해결하고...


전기는 공사장 바로 옆에 사시는 대학교 스쿨버스 운영하시는 기사분께서 흔쾌히 지원해 주셨고...


2차에 걸친 교사연수와 학생모집을 통해 29명의 학생으로 고등과정을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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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교한지가 벌써 25년이나 되었네요...

샘터야학(www.samter.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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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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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현방님의 댓글

오현방 작성일

장우모 단원, 훌륭하십니다.<br />
이루말할 수 없는 고통으로 학교를 시작했군요.<br />
이 사회는 뜻 있는 사람들의 노고로 그나마 온기가 유지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br />
<br />
학교하면서 겪은 일들도 올려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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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윤호님의 댓글

정윤호 작성일

그해 여름은 참 많은 사람들에게 잊지 못할 기억들이 많았던 해인 것 같습니다.<br />
상록수노래가 유난히 귓가에 맴돌기도 하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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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종배님의 댓글

오종배 작성일

1987년은 유난히 많은 일들이 있었던 해였어요.,<br />
대학생때 세상에 대한 호기심이 가득햇던 시절, 개인적으로도 잊을 수 없는 많은 사건이 지나갔었죠.<br />
<br />
그때 그 시절의 사진에서 풍기는 비장함에, 약간의 격세지감을 느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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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MC(단원지원)님의 댓글

KMC(단원지원) 작성일

할렐루야!<br />
대단하시네요! <br />
대학교1학년 시절 전도사님 따라 멋도모르고 개척교회 한답시고 금식기도,산기도 따라갔다가 혹한에 기도굴바닥에 군불을 때서 담요 몽땅 태우고<br />
코밑이 새까마케 되서 이틀 금식을 끝으로 기도원에서 쫓겨나서 산밑에 구멍가게에서 전도사님이 사주신 라면이 어찌나 맛있언던지<br />
금식기도 망치고 미안함도 잊은채 허겁지겁 먹던 생각이 나네요!<br />
그후 전도사님은 그해 강도사를 거쳐 목사 안수받으시고 개척해서 같이 굼기도 여러달 했고요 간장국물 끊여서 국대신 그리고 라면이 아까워서 라면에다가 국수 넣어 삶아먹고 함께고생 하셨는데 !!<br />
지금의 대림동 평강교회 개척 시절이었고 훗날 저는 목사님 조카사위가 되었네요!......  많은부분 공감이되네요!